[예수청년] “성도와 슬픔 나누는 사이 살길이 열렸죠”

가슴 아픈 가족사 딛고 자살예방 전문가로 활약 정규환

[예수청년] “성도와 슬픔 나누는 사이 살길이 열렸죠” 기사의 사진
정규환씨가 경기도 일산문화공원에서 워십 댄스를 선보이고 있다. 정씨의 춤에는 자살유가족으로서 그동안의 절망을 극복한 힘이 담겨 있다. 고양=신현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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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환(32)씨를 처음 만난 사람은 두 번 놀란다. 보는 사람까지 기분 좋게 만드는 미소와 끊임없이 발산하는 에너지에 놀라고, 그가 보여주는 활기 넘치는 모습 이면에 ‘자살유가족’이란 아픔이 숨어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최근 경기도 고양 일산문화공원에서 만난 그는 기자와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연습 중인 춤을 선보였다. 간결해 보이는 동작에도 역동적인 에너지가 느껴지는 춤사위였다. 그의 이름 앞에 왜 ‘춤추는 자살유가족’이란 수식어가 붙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파도를 넘어서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자신 앞에 파도가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겁니다. 잊히지 않는 것, 지워지지 않는 것을 인정하는 게 자살유가족이 다시 ‘살자’고 마음먹게 되는 첫 단추입니다.”

정씨는 자살유가족이 발견해야 할 삶의 전환점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러면서 전환점을 맞이하기 전까지 암울하기만 했던 자신의 옛 이야기를 꺼내 놨다.

“친가에서만 6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할아버지 대에선 5형제 모두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죠. 집안은 늘 공기가 무겁고 전쟁터 같은 느낌이었어요. 부모로부터의 양육은 물론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아버지는 삶 자체가 강퍅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유년시절의 아버지는 언제나 술에 취에 있었고 뭔가를 때려 부수고 있었어요. 의지할 곳 없는 제게 딱 한 사람, 누나만이 삶의 동아줄이 돼줬죠.”

하지만 안식처 같은 존재였던 누나는 정씨가 스무 살 되던 해 그의 삶에서 사라졌다. 가족의 테두리 안에서 경험한 7번째 자살이었다.

“누나의 대학 졸업식 날이었어요. 졸업식 3일 전 제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가게 돼서 ‘졸업식장에서 보자’고 인사를 나눈 뒤 헤어졌는데 잘 다녀오라며 웃어 보이던 게 누나의 마지막 모습이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누나의 선택에 정씨는 큰 충격을 받았다. 하나뿐인 동생으로서 고민과 아픔을 나눠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정씨는 “유서 한 장 남기지 않은 채 떠난 누나가 왜,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 수 없어서 상처가 더 컸다”고 회상했다.

누나의 죽음 이후 삶은 생지옥이 됐다. 입과 귀가 닫혔고 일상이 술로 채워졌다. 주변 사람들은 날카롭고 공격적인 모습만 남은 그를 피하기 일쑤였다. 자연스레 대인관계는 하나씩 끊어졌다. 상실감이 극에 달하면서 누나의 뒤를 따라가려 결심을 하기도 했다. 자식을 잃은 충격에 빠진 부모님 역시 생업을 접었고 가족은 대화를 잊은 채 각자 고립의 길을 걸었다.

“6년여 시간을 암흑기로 보냈습니다. 빛 한 줄기 없이 캄캄한 터널을 계속 걷는 듯 했죠. 끝이 없을 것 같은 터널 속에서 빛을 발견한 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떠난 워킹홀리데이에서였습니다.”

호주 공항에서 우연히 만난 한 성도와 서로의 아픈 과거를 털어놓은 게 계기였다. 성도는 출석하던 교회로 정씨를 전도했고 정씨는 신앙 공동체 안에서 처음으로 치유와 회복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는 “성도들과 삶을 나누는 동안 온몸에 독이 빠지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특히 고난과 슬픔을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은 물론 이야기를 듣는 다른 사람도 ‘터닝 포인트’를 마주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년 여 동안의 호주 생활은 정씨가 인생 2막을 여는 마중물이 돼줬다.

한국으로 돌아와선 오랫동안 꿈꿔왔던 실용무용학과에 입학했다. 동기들에 비해 6∼7년 가량 늦게 출발선에 섰지만 그의 열정은 나이를 극복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정씨는 입학 7개월 만에 “10년 넘게 춤 춰온 전공자들과 견줘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교회에선 청년들과 함께 ‘히즈라이트(His light)’란 이름의 워십팀을 만들어 온몸으로 복음을 전했다. 지난해 9월부턴 자살예방전문가란 타이틀을 달았다. 한국자살예방협회와 생명의전화가 공동주최한 ‘자살예방 콘서트’에서 강연자로 나서면서 그는 자살유가족으로서 생명과 관계의 소중함을 알리는 대표주자가 됐다. 한때 방안에만 틀어박힌 삶을 살았던 정씨는 방방곡곡을 다니며 자살유가족, 자살시도자, 사회복지사, 게이트키퍼를 대상으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자살예방 교육이나 자조모임에 가서 제가 앞에 나서면 자살유가족이라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밝은 모습에 신기해합니다. 자살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분들이 위기를 넘겼을 때의 풍경을 그려봤으면 좋겠어요. 생생한 기운을 느끼고 한 번 웃으면 그걸로 오늘을 살아낸 겁니다. 그러면 분명 내일도 살아낼 수 있어요.”

고양=최기영 기자

사진=신현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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