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시설 떠나는 장애인들… “아침은 시리얼 먹고 싶었어요” 기사의 사진
장애인시설에서 나와 서울 영등포구의 아파트에서 자립생활을 하고 있는 유호경씨(왼쪽 사진)와 이창선씨. 지난 5일 유씨는 거실에서 노트북으로 인터넷 검색을 하고 있고, 이씨는 자신의 방 침상에 누워 아침드라마를 보고 있다. 심우삼 기자
34년 시설생활 끝낸 유호경씨
그동안 못했던 것 맘껏 하고있어… 야학서 공부하고 시 낭송하기도
26년 시설생활 끝낸 이창선씨
같은 시설서 나온 누나와 연애… 취향대로 먹고 늦잠도 실컷 즐겨


“아침에 시리얼을 먹고 싶었어요.”

서울 영등포구의 한 자립생활주택에서 지난 5일 만난 유호경(51)씨는 “왜 시설을 나왔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가 광주 인화학교 사태를 다룬 영화 ‘도가니’ 속 장애인들처럼 심각한 학대를 겪은 것은 아니었다. 장애인시설의 분위기도 이전과 비교하면 좋아졌다고 했다. 그래도 아쉬운 것이 있었다. 집에서 지내는 비장애인들처럼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지 못하는 단체생활이 답답했다. 유씨와 함께 사는 이창선(34)씨는 “돈도 마음대로 쓸 수 없고 밥도 마음대로 먹지 못하는 게 싫었다”고 했다.

장애인시설에서 지내다 나온 두 사람은 자립생활에 적응 중이다. 지체장애와 언어장애를 갖고 있는 유씨는 아파트단지 앞에 도착한 기자를 환한 미소로 맞았다. 분홍색 열쇠고리가 달린 열쇠 꾸러미를 흔들며 11층에 위치한 집으로 안내했다. 현관문을 열자 뇌병변 장애를 앓고 있어 거동이 불편한 이씨가 안방에서 큰 목소리로 “안녕하세요”라며 인사했다.

유씨는 경기도 남양주의 한 장애인시설에서 34년을 지냈다. 이씨는 경기도 광주의 장애인시설에서 26년을 보냈다. 여러 장애인이 단체생활을 하는 시설 생활이 이들에게는 단조롭고 답답했다. 유씨와 이씨는 “밥 먹고, 자고 텔레비전(TV) 보는 게 시설 생활의 전부였다”라고 말했다. 보고 싶은 사람을 보고 싶을 때 만나는 것도, 가고 싶은 곳을 가고 싶을 때 가는 것도 불가능했다.

무엇보다 먹기 싫은 아침을 억지로 먹어야 하는 게 곤욕이었다. 이씨는 “아침에는 가볍게 시리얼을 먹고 싶은데 무조건 일어나 시설에서 주는 밥을 먹어야 했다”고 말했다. 늦잠도 잘 수 없었다. 시설에서는 항상 오전 6시 기상을 주문했다. 단지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단체생활을 해야 했다. 이씨가 있던 시설은 자체 프로그램이 있어서 주말에는 외출도 하고 근방에서 산책도 할 수 있었던 게 그나마 나은 점이었다.

유씨와 이씨는 시설에서 나온 지 각각 1년과 5개월이 되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수십년간 시설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은 경험을 했다.

이씨는 이제 취향대로 아침식사를 한다. 어제는 삶은 계란을 먹었고 오늘은 좋아하는 시리얼로 아침 식사를 했다. 늦잠도 실컷 잔다. 오전 7시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한두 시간 낮잠을 자곤 한다. 같은 시설에서 나온 누나와 연애도 한다. 지금의 여자친구가 이씨에게 “자립했으니까 놀러와”라고 말한 게 계기였다. “남자친구가 있느냐”고 물었는데 없다는 대답을 듣자 과감하게 프러포즈를 했다. 이씨에게는 첫 연애다. 대부분 장애인시설에서는 남녀의 생활공간이 구분되는 데다 성인이라도 연애를 금지하는 경우가 많다.

유씨는 일주일에 네 번 성북구 장애인배움터 너른마당에서 공부를 한다. 야학에서 국어와 수학을 배우고 시를 낭송한다. 컴퓨터에서 검색해 좋아하는 연예인 사진을 보는 게 취미가 됐다. 얼마 전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는 유씨는 이씨를 부러워하며 “새 여자친구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인터뷰가 끝나갈 즈음 이씨는 외출준비를 서둘렀다. 목요일은 야학에 가는 날이다. 야학 동기인 유씨는 결석이다. 대신 장애인 거주시설 폐지 집회에 나갈 계획이다. 유씨가 있던 시설에선 외출이나 산책은커녕 같은 시설 거주자들끼리 대화하는 것도 어려웠다. 폭력 행위도 있었다. 유씨는 “아무 이유도 없이 맞는 장애인들도 봤다”고 말했다. 그는 온몸을 흔들며 주먹으로 얼굴과 가슴을 때리고 발길질하는 장면을 설명했다. 유씨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투쟁해야 한다”고 했다.

유씨와 이씨 모두 시설에서 먼저 나가 자립한 이들이 잘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새로운 삶을 결심했다고 한다. 이제는 자신들이 시설에 남아 있는 동료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씨는 “삼총사처럼 지냈던 친구 둘이 아직 시설에 있다”며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장애인들의 탈시설을 돕는 활동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허경구 심우삼 기자 ni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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