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김재천] 오바마와 文정부의 공공외교 기사의 사진
예일대 출신 억만장자 리 배스는 1991년 서구 문명(Western Civilization) 전공 교수와 과목을 확충해 줄 것을 부탁하며 2000만 달러를 모교에 쾌척했다. 문제는 배스가 교수 임용 과정에 개입하면서 발생했다. 당시 예일대 서구 문명 전공 교수 중에는 소위 좌파적 시각을 가진 학자들이 다수 있었다. ‘영국의 사회주의자’임을 자처하며 “서구 문명의 주 수출품은 폭력”이라고 주장하는 교수, 셰익스피어 희곡은 서구 식민주의 억압성의 사례로 연구해야 한다는 교수도 있었다. 배스는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서구 문명의 가치를 폄하하는 학자들에게 교수 임용을 일임할 수 없다며, 이들이 선발하는 신임 교수를 자신이 최종 인준할 수 있는 권한을 요구했다. 하지만 예일대는 대학의 인사권과 독립성은 수호돼야 한다며 현재 가치로 400억원을 상회하는 거금을 배스에게 고스란히 돌려주는 결정을 내렸다.

한국 정부가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산하 한미연구소(USKI) 지원을 중단한다. 정부가 지적했듯 USKI에 투여된 돈은 기부금이 아니라 지원금이었다. USKI가 기금을 방만하게 운영했다고 판단됐다면 회계 투명성을 요구하고, 시정이 되지 않으면 조용히 지원을 중단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한국 정부 개입의 방식과 정도는 USKI뿐 아니라 미국 여론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정부가 개입해 연구소 소장과 부소장 경질을 요구하며 인사권에 개입한 행위는 예일대 사례와 마찬가지로 명백한 대학 독립성 침해이고, 명문대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 정부가 바뀌면 기관의 장들이 추풍낙엽처럼 날아가는 한국 풍토에서는 잘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다. 양방의 규범과 기대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방만한 기금 운영을 문제 삼았지만 학교의 감사 결과는 ‘이상무’였고, 성의 없다고 질타한 연구소의 두 장짜리 결산 보고서도 SAIS가 사용하는 양식이다). 하지만 USKI 지원은 한국의 공공외교 차원에서 진행된 것이 아닌가. 공공외교는 상대국 국민의 마음을 움직여 한국에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하는 목적이 있다. 기본적으로 눈높이를 상대의 기준에 맞춰야 가능한 일인데, 한국 정부는 자신의 잣대를 들이댔다. 역대 어느 정부보다 공공외교에 공을 기울이고 있는 문재인정부여서 더 안타깝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 존스홉킨스대와 결자해지해야 한다. SAIS의 아시아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는 켄트 캘더 교수 등과 논의해 한국학 관련 프로그램을 재개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프로그램이 구성되면 민간으로 구성된 자문위원회를 만들고, 정부는 ‘콩 놔라 팥 놔라’ 하지 말고 뒤로 빠져야 한다.

조지 부시 대통령의 일방적 정권교체 정책으로 미국의 대외 이미지가 타격을 입자 당시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변환 외교’의 기치 아래 공공외교를 강화해 인심을 만회하려 했다. 하지만 체제의 성격 변환이라는 정책목표가 있었기에 라이스의 공공외교는 대상국의 마음을 사지 못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공공외교는 여기서 진일보한다. 해외 파견 외교관들에게 일상복과 작업복을 챙겨가기를 권고하고, 특정 목표에 연연하지 말고 지역민과 소규모 만남을 하고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등 선행을 하라고 했다. 마크 리퍼트 당시 주한 미국대사가 유니폼을 입고 아들 세준이와 야구장에 나타나고, 해녀복을 입고 제주 해녀들과 바닷속에 들어간 것도 이 즈음이다. 오바마의 공공외교는 미국의 위상을 되찾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문재인정부는 ‘공공외교를 통한 국익 증진’을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선정하고 적지 않은 예산을 투여하고 있다. 주미 한국대사관은 공공외교 공사 자리까지 신설하며 대미 공공외교에 의욕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의도가 있더라도 공공외교는 상대에게 갑질로 보이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돈과 인력으로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북핵 폐기를 위해 한·미 공조가 절실한 시점에 대미 공공외교가 삐걱거리고 있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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