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김남중] 지방으로 가는 청년들 기사의 사진
알고 지내던 40대 초반의 출판사 팀장이 강원도 고성으로 이주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10여년 경력의 편집자로 국내 최고 출판사 중 한 곳에서 일하던 사람이었다. 지난해 여름부터 아내, 딸과 함께 지방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는 고성군 한 바닷가에 집을 구하고 거기서 책을 만들고 있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해변에 텐트를 쳐놓고 사무실로 사용한다. 저녁 6시 이후엔 휴대전화를 꺼놓는다. 책 출판과 편집 외주, 아내의 디자인 수입으로 세 가족의 삶을 꾸려간다고 한다.

지난해 여름휴가에는 경남 통영에 갔다가 책방을 하는 정은영씨를 만났다. 통영에 있는 ‘봄날의 책방’은 책과 서점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명소가 된 동네책방이다. 정씨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30대 후반에 남편과 함께 통영으로 내려왔다. 책방과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8년째 봉수골 주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요즘 일요일 저녁에는 소파에 누워 ‘효리네 민박’을 시청한다. 톱스타였던 가수 이효리씨는 2013년 결혼과 함께 제주도 애월읍 소길리에 정착했다. 그녀가 제주도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엿보면서 지방이라는 선택이 한 사람과 삶, 일을 다른 차원으로 데려다줄 수도 있음을 알게 된다.

지방에서의 삶, 농촌에서의 삶은 누군가에게 늘 동경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 누군가는 주로 아저씨들이나 노인들이었다. 지금은 청년들이 지방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노인들만 살던 강원도 동해안의 소도시 양양은 요 몇 년 사이 한국에서 가장 ‘힙’한 동네로 변신했다. 서핑을 좋아하는 젊은이들이 하나둘 모여들더니 지금은 외국에서나 볼 수 있는 ‘서퍼들의 도시’가 됐다. 강릉에도, 경주에도, 충주에도 젊은이들이 들어와 가게를 내고 다양한 사업들을 벌이는 중이다.

지난 2월 개봉된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20대 청년, 그것도 여성의 농촌생활을 다뤘다. 여주인공은 서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임용고시 준비를 하다가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로 낙향한다. 아무도 없는 시골집에서 혼자 밥을 해 먹고 농작물을 키우고 주민들과 어울리면서 서서히 회복해 나간다.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청년 농부의 길을 선택한 남자 동창도 등장한다. 농사짓는 20대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를 150만명이 봤다. 지방이나 농촌이 청년들에게, 심지어 젊은 여성들에게도 삶의 한 방식으로 제시되고 있다는 건 분명 새로운 현상이다. 흔히 노년의 휴식처나 피난처 정도로 여겨져 온 지방이 젊은이들의 새로운 삶, 다른 삶, 더 나은 삶을 위한 가능성을 품은 곳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실제로 주변에서도 회사 생활에 지친 젊은이들이 지방 이주를 하나의 대안으로 거론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일본 출판계에서 10여년 전부터 지방 이주가 하나의 소주제를 이룰 정도로 인기를 끄는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심플 라이프’(단순한 삶) ‘다운시프트’(더 많은 행복을 위해 더 적게 버는 삶) ‘워라벨’(일과 삶의 균형)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등 근래의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들에서도 ‘로컬 지향’이 공통적으로 드러난다.

도시적 삶은 지난 수십 년간 청년들을 끌어당겼다. 지방의 젊은이들은 일자리와 매력을 찾아 우르르 도시로 몰려왔다. 그러나 태생부터 도시인인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도시는 그리 매력적인 공간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날로그의 반격’이란 책은 디지털 네이티브인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디지털 문명이 편리나 첨단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LP나 책, 수공예 같은 오래된 문화가 오히려 새로운 문화로 발견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금 젊은이들에게 지방은 ‘아날로그’나 ‘빈티지’ 같은 게 아닐까.

지방으로 가는 청년들을 다소 감격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다가 지방정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지금 지방은 청년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지방정치는 청년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가.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지만 청년후보, 청년정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김남중 사회2부 차장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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