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손수호] 헌법 前文부터 손보자 기사의 사진
김훈 작가가 헌법 전문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중요한 가치들을 한 문장에 다 넣으려고 하다 보니 그 누구도 쉽게 이해하지 못하게 쓰여 있다. 개헌을 한다면 헌법의 문장을 쉽게 다듬는 작업이 꼭 들어갔으면 한다.” 이달 초 우리글진흥원이 공무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공공언어 바로세우기’ 강연에서 한 말이다. 그는 평소에도 헌법의 불친절을 자주 이야기해오던 터였다.

그동안 개헌 논의를 보면 권력구조를 놓고 줄다리기를 하다가 여의치 않으면 양쪽이 똑같이 줄을 놓아버리는 모양이었다. 때로는 헌법 전문에 어떤 날짜를 추가할지, ‘자유민주’에서 ‘자유’를 뺄지, 서울과 수도의 지위를 어떻게 할지 소란스러웠을 뿐 문장을 돌아볼 일은 없었다.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이 물 건너간 상황이긴 해도 헌법 전문만큼은 별도의 과정을 통해 짚어볼 가치가 있다고 본다.

헌법 전문이 어떠하기에 많은 사람들이 걱정할까. 우선 법제처의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출력을 해보니 무려 11행의 글이 하나의 문장으로 이어져 있다. 읽다보면 숨이 차고, 나중에는 난삽한 판결문처럼 고통스럽다. 이걸 문장으로 보아야 하나? 읽는 사람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일까? “∼하여” “∼하고” “∼하며”로 끝없이 계속되는 글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알 수 없고, 문장의 뼈대인 주술 구조마저 모호하게 만든다.

출전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제헌헌법에 닿는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으로 시작되어 “∼제정하려는 것이다”까지 지금처럼 한 문장이다. 초안의 작성자는 유진오 박사인데, 문인보다는 법률가의 임무에 충실했던 것으로 보인다. 1948년 5월 10일에 구성된 제헌국회가 20일 만인 31일에 제정했으니 이것저것 돌아볼 여유도 없었으리라. 이후 1987년에 손을 많이 보긴 해도 본령은 건드리지 못했으니 거북한 유산으로 남게 된 것이다.

헌법 전문이 중요한 것은 한 나라의 정신을 담은 장전(章典)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공동체가 지향하는 보편적인 기준이 제시되고 행복추구권, 알 권리, 평등권 등 국민의 인간다운 삶을 가능케 하는 규범의 원천이 된다. 개인의 자율, 창의적인 문화, 복지를 통한 나눔 등의 가치도 담아야 한다. 따라서 문명국가의 헌법 전문이라면 국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지어야 한다.

그런데도 지금의 글은 대한민국의 대표 문장으로 내세우기에는 한참 부족하다. 형식과 내용이 다 그렇다. ‘오등은 자에 아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로 시작하는 기미독립선언서는 지금 읽어도 몸이 저려오는 명문이다. 근 100년 전에 지어진 글이 여태껏 공감을 불러온다. 베이비부머들이 달달 외웠던 국민교육헌장도 내용에 문제가 있어 그렇지 글의 흐름은 유려하다.

외국의 사례를 봐도 우리처럼 떡이 진 문장은 찾기 어렵다. 일본 헌법 전문은 의외로 담담하다. 평화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대목을 제외하면 주권재민과 국제주의 따위를 객관적으로 적고 있다. 미국은 연방(Union)의 목적, 정의와 자유, 치안과 방위 등을 문장 하나에 담았고, 법치주의의 역사가 긴 독일과 프랑스도 간결한 전문을 가지고 있다.

우리도 이제 좋은 글 하나를 가질 때가 됐다. 방법은 쉽다. 향후 있을 헌법 개정 작업에 문인을 참여시키는 것이다. 1957년에 마해송 강소천 등 일군의 아동문학가들이 근사한 어린이헌장을 빚어냈듯 작가들의 손을 빌리면 같은 내용이라도 구슬 같은 글을 만들 수 있다. ‘알기 쉬운 헌법 만들기 국민운동본부’ 같은 민간단체들도 있다. 한 시대의 정신이 미려한 문장에 담기면 국민들이 베끼고 싶은 필사, 눈감고 읊는 암송의 대상이 된다.

손수호(객원논설위원·인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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