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대림동의 아프리카] 조선족 떠난 ‘3D 일자리’ 아프리카인이 바통 기사의 사진
아프리카 출신 난민신청자 두 명이 지난 17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의 한 직업소개소를 나서고 있다. 대림동 인력시장에선 일자리를 구하는 아프리카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곽경근 선임기자
매일 400명 이상 일자리 구해 한곳에 하루 30∼40명 찾기도
국가별 커뮤니티 형성 소문 돌며 특정지역에 몰려
대부분 ‘G-1-5 비자’ 소지 6개월 지나면 구직활동 허용
전국 연결… 고학력자도 많아

터덜터덜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두 명의 젊은 흑인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하이.” 상가건물 지하 1층에 자리 잡은 사설 직업소개소 직원이 반갑게 인사했다. 지난 16일 인력업체가 모여 있는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을 찾은 두 아프리카인은 직업소개소의 낡은 철제의자에 앉아 미리 준비한 서류와 G-1-5비자를 꺼냈다. 직원은 짧은 영어로 답했다. “비자 이즈 굿.” “굿 잡. 내가 체킹해줄게” “플리즈 웨이팅 해. 오케이?”

직업소개소 직원 성모(56)씨는 “지난해 여름부터 이 동네에 아프리카인들이 급증했다”며 “많을 때는 아프리카 사람이 하루 30∼40명도 찾아온다”고 말했다.

직업소개소 한 곳을 찾는 사람이 하루 평균 80명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아프리카인들이 절반을 차지할 때도 있는 셈이다. 중국인과 조선족 일색이었던 대림역 8번 출구 주변 인력시장에는 매일 400명 이상의 아프리카인이 일자리를 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조선족이나 중국 한족들도 마다하는 어렵고 힘든 일도 도맡는다. 아프리카인의 등장으로 대림동 인력시장은 바닥부터 재편됐다.

대림동을 찾는 아프리카인들이 왜 지난해 여름부터 급증했는지는 명확히 파악되지 않는다. “국가별로 온라인 및 오프라인에 커뮤니티가 형성돼 있는데 ‘일자리를 잘 구해주는 곳이 있다’는 소문이 돌면 특정 지역으로 몰리곤 한다”는 직업소개소 직원들의 언급에서 이유를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일부 직업소개소에서는 급증한 아프리카인들을 응대하기 위해 영어를 구사하는 외국인 직원까지 채용했다. 18일 만난 네팔 출신 P씨(34·여)는 3주 전부터 이곳의 한 사설 직업소개소에서 일하고 있다. 한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그는 “대림동 직업소개소를 찾는 아프리카인들의 90%는 난민신청비자 소지자”라며 “이들 중 절반만 취업에 성공한다”고 귀띔했다.

대림동을 찾는 아프리카 사람들은 대부분 G-1-5비자를 가지고 있다. 한국에 들어와 난민으로 인정받기 위해 심사를 기다리는 난민신청자 신분이다. 원칙적으로는 난민으로 인정되기 전까지는 취업할 수 없지만 법무부는 1차 난민심사 기간인 6개월이 지나면 구직활동을 허용하고 있다. 이들의 국적은 남아프리카공화국 나이지리아 가나 세네갈 에티오피아 카메룬 튀니지 이집트 등 아프리카 대륙 동서남북 전역에 걸쳐 있다.

나이지리아 출신 D씨(30)는 4개월 전 한국에 들어와 난민비자를 받았다. 머리를 밀고 수염을 기른 그는 유창한 영어로 “나이지리아인 커뮤니티에서 알게 된 친구가 대림동에 가면 쉽게 일을 구할 수 있다고 해서 왔다”며 “월급 200만원의 일자리를 찾고 있다”고 했다. D씨는 충남 지역의 소규모 플라스틱 가공업체를 소개받았다.

아프리카 난민신청자들은 주로 3D(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업종에서 일한다. 중국인 구직자들이 상대적으로 임금이 높은 건설현장으로 몰리면서 그 빈자리를 아프리카인들이 채우는 셈이다. 아프리카인에게 주어지는 일자리는 주로 수도권과 충청도·강원도 등지에서 직원 수가 3∼5명 정도 되는 영세공장이나 농촌 비닐하우스 일이다.

직업소개소 직원 임모(75)씨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상대로 공장 농장 소목장 양계장 두부공장 어촌 등 다양한 곳으로 직업을 알선해 준다”며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전국 단위로 일자리를 연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이 받는 임금은 월급을 기준으로 130만원에서 220만원까지 다양하다. 직업소개소는 취업수수료로 1인당 15만원 안팎을 받는다.

아프리카 출신 난민신청자들 중에는 고학력자도 많다. D씨도 고국에서 경영학 석사학위까지 땄지만 한국에 들어와서는 3D 업종의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 직업소개소 직원 A씨(53)는 “아프리카인 구직자 중에는 대학교육까지 마친 고학력자도 많다”며 “해외에 나가 일자리를 구할 정도라면 고국에 있을 때부터 정보가 많은 계층이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 아프리카에서 온 난민신청자들이 없으면 한국의 3D산업은 굴러갈 수조차 없다”고 강조했다.

이형민 김지애 기자 gilels@kmib.co.kr

사진=곽경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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