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손병호] 김정은, 덩샤오핑 꿈꾸는 걸까 기사의 사진
최근 한반도의 유화 국면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올해 신년사에서 비롯됐다.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때 대표단 파견 의향을 밝혔다. 이후 북한 대표단의 방남과 남한 특사단의 방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 수용, 김정은의 중국 방문 등을 통해 현 상황까지 오게 됐다.

신년사를 다시 꺼내 읽었다. 그런데 1월에는 보이지 않던 구절들이 눈에 들어왔다. 김정은은 당시 “사회주의 강국 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새로운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혁명적인 총공세를 벌여나가자”라는 것을 새로운 혁명 구호로 내세웠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지침을 내렸다. ‘전반적 국력을 새로운 발전 단계에 올려 세우기’ ‘경제전선 전반의 활성화’ ‘인민 생활의 개선 향상’ 세 가지 지침이다.

이 세 가지 지침은 1978년 중국의 덩샤오핑이 공산당 제11기 3중전회(中全會)에서 개혁개방 정책을 처음 표방하면서 주창한 세 가지 실천강령과 아주 흡사하다. 덩샤오핑은 ‘종합 국력의 증강’ ‘생산력의 발전’ ‘인민생활의 향상’ 세 가지를 내세웠다. 김정은 지침은 덩샤오핑 실천강령과 사실상 같은 표현이고, 같은 의미다. 덩샤오핑은 “세 가지 중 어느 하나에 도움이 된다면 자본주의적 요소도 과감히 도입할 수 있다”는 파격적 지침을 내렸다. 그 지침은 중국을 오늘날의 세계 최강 경제대국으로 변모시켰다.

최근 김정은의 행보가 계속 파격이고, 예상을 뛰어넘고 있다고 여겨지는 것은 어쩌면 이런 커다란 방향전환에 기반한 행보일 가능성이 있어서다. 김정은의 행보는 단순히 제재 해제와 비핵화를 맞바꾸는 수준을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북한사회 자체를 중국식 ‘개혁개방의 사회주의’ 또는 ‘도이모이(쇄신)’ 정책을 내세운 베트남식 사회주의로 탈바꿈시키겠다고 선언한 것일 수 있다. 프랑스 유학파 덩샤오핑이 중국식 특색 사회주의의 길을 놓았듯, 스위스 유학파 출신으로, 김정은식 특색 사회주의를 추구하고 있을지 모른다.

만약 그런 변화라면 ‘비핵화’ 개념에 기존에 만들어진 핵무기가 포함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큰 걸림돌이 아닐 수도 있다. 김정은이 내세운 세 가지 지침에 도움이 된다면 핵무기가 아니라 핵무기 할아버지도 폐기할지 모른다. 그래서 중국인들이 ‘해방돼서는 마오쩌둥을 잊지 않고, 먹고살게 돼서는 덩샤오핑에게 감사드린다’고 하듯, 할아버지 김일성을 뛰어넘는 위상을 차지하려 할 것이다.

김정은은 비단 경제 발전만 노린 게 아닐 것이다. 개혁개방과 비핵화는 김정은 일가의 새로운 장기집권 플랜일 수 있다. 핵을 통한 체제 유지는 한계가 있다. 북한 사회를 언제까지고 지금처럼 통제하기는 쉽지 않다. 제재가 계속된다면 굶주린 주민들은 몇 년 뒤 북한발 피플 혁명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이에 김정은이 선제적으로 나섰을 것이다. 인민생활을 향상시켜 배불리게 해준 지도자로 각인시켜 장기집권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목적 말이다.

CNN방송은 최근 김정은이 남한과 계속 교류하다보면 남한과 경제적으로 경쟁해야 하고, 그럴 경우 남북한 사회가 자꾸 비교되면서 발전이 더딘 김정은 체제가 궁지로 몰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래서 김정은의 행보가 본인으로선 ‘위험한 도박’이라고 평가했다. ‘남한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쩌면 김정은의 생각은 거기까지 가 있을지 모른다. 시간이 문제일 뿐 풍부한 지하자원과 높은 교육 수준, 뛰어난 과학기술 능력을 감안하면 꼭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과거 하찮아 보이기만 했던 중국이 현재 한국 경제를 뛰어넘었듯이 말이다. 게다가 주변국들은 선물을 잔뜩 준비하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김정은한테서 덩샤오핑이 오버랩되길 기대해 본다. 그렇게 해서 한반도의 미래에 긍정적인 대전환이 펼쳐지길 기원한다.

손병호 국제부장 bhs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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