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이성규] 거대 담론에 대한 경계 기사의 사진
결혼 12년 만에 처음으로 가족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4박5일 사이판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파란 하늘이었다. 미세먼지 걱정 없이 열한 살, 여섯 살인 두 딸을 마음 놓고 풀어놓았다. 하룻밤만 더 자자는 두 딸의 아우성을 뒤로한 채 귀국 비행기에 올랐다. 인천공항이 가까워질수록 사이판과 180도 다른 우중충한 하늘색을 보고 우울해졌다. 공항에서 나와 가장 먼저 한 일은 딸들에게 마스크를 씌우는 것이었다. 집으로 가는 공항리무진 막차를 탔다. 두 아이를 가장 안전하다는 운전석 뒷자리에 앉혔다. 깜박 졸다가 차가 몹시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함께 탄 다른 승객이 기사에게 다가가 물 한 병을 건네며 졸음운전하지 마시고 쉬다 가시라고 공손히 말했다. 그러나 기사의 반응은 수준 이하였다. 자기는 졸지 않았다며 갓길에 비상주차를 한 뒤 출발하고 싶으면 얘기하라며 운전대를 놨다.

취재를 하면서 거짓말하는 사람의 태도를 많이 봐 왔다. 기사는 분명 졸았다. 졸지 않았으면 버럭 화를 냈을 일이고, 그렇게 비꼬면서 승객 탓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참다못해 끼어들었다. “기사님, 제가 보기엔 조신 것 같은데 왜 승객 탓을 하세요. 지금부터라도 안전하게 운전해 주세요.”

그 뒤 종착지까지 한 시간은 ‘공포 버스’였다. 기사는 혼잣말로 욕을 하면서 버스를 험하게 몰았다. 아이들의 안전이 걱정돼 한마디도 안 하고 참았다. 버스 안 TV에서는 서울과 평양 간 남북 직통전화가 뚫렸다는 뉴스가 나왔다. 서울과 평양의 대화는 “서울은 날씨가 좋은데 평양은 어떠세요”로 시작됐다. 미세먼지가 ‘매우 나쁨’이었는데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좋은 날씨라고 했다.

기사의 욕설 섞인 혼잣말과 뿌연 창밖을 바라보며 우리 아이들이 사는 이 나라가 나쁜 공기 속에 안전하지도 않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해외여행을 간 일주일 새 뉴스는 쌓여 있었다.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은 사퇴했고 드루킹은 뉴스 왕이,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는 ‘갑질의 여왕’이 돼 있었다.

그러나 남북 해빙 뉴스를 포함해 그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세월호 참사 4주기가 지나도록 우리 일상은 위험으로 가득 차 있고, 주말에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를 한번 타려 해도 미세먼지 때문에 주저하게 된다.

이틀 전에는 이런 뉴스도 있었다. 두 살에 백혈병에 걸려 3년간 잘 버텨온 재윤이는 지난해 말 완치 판정을 눈앞에 두고 골수 검사를 받다가 숨졌다. 산소호흡기 등 응급 의료장비도 없는 곳에서 골수 검사를 강행하다가 검사 시작 6시간 만에 사망했다. 2010년에는 재윤이와 같은 병을 앓던 아홉 살 종현이도 3년이란 긴 투병생활을 잘 이겨내고 마지막 항암치료를 받던 중 사고를 당했다. 정맥에 놔야 할 항암제를 허리뼈에 놓은 의료진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고통 속에 눈을 감았다. 이를 계기로 환자안전법(이른바 종현이법)이 만들어졌지만 또다시 ‘제2의 종현이’가 생겨난 것이다. 우리 사회 곳곳의 안전 불감증은 걸레로 박박 닦아내도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지하 방의 곰팡이처럼 느껴진다.

네 살 아이를 둔 한 지인은 미세먼지가 심한 날마다 “뿌연 하늘에 먼지 괴물이 있어서 밖에 나갈 수 없다”고 말한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아이는 “언제 괴물이 없어져요. 아빠가 먼지 괴물을 이기면 되지 않아요”라고 묻지만 “아빠가 진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집에 도착하자 두 딸은 집이 최고라며 침대에서 방방 뛰었다.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 방방 뛰며 즐거워지는 나라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남북 정상회담 등 거대 담론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 개개인의 행복이다. 그 행복들이 모여야 진정 ‘나라다운 나라’가 된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은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먼 통일보다 제대로 숨 쉴 수 있는 안전한 나라를 원한다. ‘방방 뛸 수 있는 나라’로 바꾸는 것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을 포기하는 것보다 어려울 수도 있다. 그래도 두 딸이 엄마가 돼 아이를 키울 때는 그런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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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규 경제부 차장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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