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산책] 흰 소, 이 땅의 가족이야기 기사의 사진
황영성 ‘가족이야기’ 캔버스에 유채. 2017. 현대화랑
회색 빛 마당에 흰 소 두 마리가 조용히 앉아 있다. 커다란 눈망울로 화폭 밖을 응시하는 순한 소다. 소 주위에는 호랑이와 토끼, 별과 달이 자리를 잡았다. 살구나무는 탐스러운 분홍색 꽃을 활짝 피웠고 새는 힘차게 하늘을 난다. 작은 초가집에는 한 가족이 정겹게 앉아 있다. 나무 아래 소년과 강아지는 꽃향기에 신명이 났다. 각박한 도시생활에 지친 이들을 전원으로 훌쩍 데려가는 목가적이면서도 서정적인 풍경화다.

농촌마을에 찾아온 봄을 푸근한 시선으로 그린 화가는 황영성이다. 1941년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나 1950년 6·25전쟁 때 광주에 정착한 황영성은 어린 시절 흰 소와 친구처럼 지냈다.

들판으로 데리고 나가 풀을 뜯게 하고 등에 타보기도 했다. 소의 깊고 낮은 울음소리를 무시로 들으며 자랐다. 큰 눈망울의 흰 소는 소년의 마음을 알아주는 가족이었다. 때문에 황영성 그림 속 소는 가족 구성원으로 인격화된다. 소뿐이 아니다. 자연의 가족, 만물의 가족이 스스럼없이 어우러지며 거대한 가족 이야기가 탄생한다. 화폭 사이로 자연의 질서가 도도히 흐른다. 눈앞의 작은 것에 집착하는 현대인에게 황영성의 그림은 ‘잠시 그것들을 내려놓고 대자연의 숨소리에 귀 기울여보라’고 속삭인다.

반세기 동안 끈질긴 조형 실험을 거듭하며 우리의 서정을 서양의 표현기법에 독특하게 압축해낸 ‘황영성표 추상회화’는 프랑스 등 유럽과 중국에서 반향이 크다. “여든을 앞두니 안 보이던 세계가 보인다”며 새롭게 ‘문자형상’과 ‘검은 소’ 연작을 시도한 황영성의 회화적 모색을 살필 수 있는 초대전이 현대화랑서 개막됐다. 8년 만의 서울 전시로 5월 27일까지 이어진다.

이영란 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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