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권기석] 대한항공 갑질 사태와 상법 개정 기사의 사진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창업한 회사 애플에서 1985년 쫓겨난 적이 있다. 당시 애플 이사회는 그가 지나치게 변덕스러워 경영을 맡기기에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창업자라는 점은 고려되지 않았다. 시장경제의 ‘피도 눈물도 없음’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한국의 시장경제에는 피와 눈물이 있다. 특히 ‘피’의 역할이 커서 주요 대기업의 경영권은 혈연에 따라 세습된다. 주식회사의 경영권은 주주 이익을 위해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것이지만 세습된 경영권은 수십년 이상 고정돼 있다.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일가의 ‘갑질’ 사태는 고정된 경영권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주는 사례다. 조 회장 일가가 왕조 시대에도 없었을 폭언·폭행과 불법행위를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절대적으로 고정된 경영권이 있다. 총수 일가는 여간해서 경영권을 빼앗기지 않는 구조가 무소불위의 태도를 낳게 했다. 주식회사 고유의 원리를 따른다면 대한항공 이사회는 회사와 주주에 미칠 피해를 고려해 조 회장과 그 아들의 등기이사 지위를 박탈하고 경영에서도 물러나도록 하는 논의를 벌써 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사회는 잠잠하고 앞으로도 행동에 나서지 않을 것이다. 사실상 조 회장의 뜻으로 구성된 이사회이기 때문이다. 시스템으로 조 회장을 물러나게 하지 못하고 ‘스스로 물러나라’고 촉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다른 대기업도 대부분 총수가 실질적으로 이사회를 구성한다. 이사회 견제가 역할인 사외이사는 거수기 노릇만 하고 있다. 그래서 박근혜정부에 이어 현 정부가 추진하는 게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 등을 골자로 한 상법 개정이다. 집중투표제를 도입하면 소액 주주가 추천하는 인사가 등기임원이 될 가능성이 생긴다. 감사위원을 분리해 뽑으면 대주주의 의결권 행사가 제한된다.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을 이사로 앉혀 경영권을 견제해보자는 취지다.

법무부가 최근 상법 개정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의견을 국회에 제출하자 재계가 반발하고 있다. 해외 투기자본이 경영권을 침해할 수 있고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을 도입한 나라가 거의 없다는 게 반대 논리다. 하지만 경영권을 회사와 주주의 이익만을 위해 써왔는지 기업들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서 주요 기업이 수십억원씩을 헌납할 수 있었던 건 견제 받지 않는 경영권이 있어서였다. 이 또한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었다.

권기석 차장

그래픽=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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