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홍관희]  비핵화 없는 평화는 사상누각 기사의 사진
4월 27일 열린 남북 정상회담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한반도 안보와 평화 실현에 대한 적잖은 기대를 모았다. 관심의 초점인 북한 비핵화 문제에 대해 두 정상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실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합의가 ‘북한의 비핵화’를 의미하는지, 북한이 주장하는 ‘조선(한)반도의 비핵화’를 뜻하는지 불분명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더욱이 김정은은 회담 후 가진 공동발표에서 비핵화는 물론 어떠한 핵 언급도 하지 않음으로써 지난 4·20 노동당 전원회의의 핵 보유 입장을 기정사실화하는 태도를 보였다.

비핵화의 개념과 로드맵을 놓고 줄다리기를 벌여 온 한·미와 북한 간 입장 차는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좁혀지지 않았고, 문재인정부가 이 사안에 대해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오히려 북한의 주장을 묵인하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한편 북한의 상투적인 ‘적대시 정책 반대’라는 대남 구호를 수용해 대북 확성기를 철거하고 전단 살포를 중지하기로 한 것도 파장을 낳을 전망이다. 국민의 자유로운 대북 의사표현 수단을 남북 합의로 금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두 정상의 10·4 선언 추진 방침에 따라 서해 평화수역화가 시도될 경우 국군의 북방한계선(NLL) 방어 전략에 심각한 차질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제 북한 비핵화는 미·북 정상회담의 몫으로 넘어갔다. 백악관의 입장은 분명하다. 북핵의 전면적이고 신속한(6개월∼1년 추정) CVID(완전한 해체)식 폐기다. 문재인정부가 6월 미·북 회담을 앞두고 추호라도 미국의 원칙적인 대북 노선을 완화시키려 시도해선 안 된다. 자칫 중재를 구실로 북한의 핵 굳히기 전략을 지지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회담에서 보인 김정은의 태도로 보아 북한의 핵 포기 의지를 신뢰하기엔 때가 이르다. 외신(블룸버그 통신)은 남북 화해 무드가 미국의 대북 압박과 협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정세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동북아 무장평화를 견인해 온 ‘힘에 의한 북 도발 억제’ 레짐이 중심을 잃는 반면 북한과의 불안전하고 불투명한 화해·협력 구도가 급부상해 대적관·안보관 및 동맹 간 신뢰에 혼선을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보 토대가 없는 구두(口頭) 평화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수많은 비극적 국가멸망사(史)가 말해준다. 전쟁 연구가들은 전쟁 억제 역량이 소실된 가운데 우발적 사건이 발생할 때 대규모 전쟁으로 이어질 개연성을 우려한다.

불과 수개월 전만 해도 통일대전에 몰입했던 김정은이 정상회담장에서 평화 애호자로 변신한 것은 그의 능란한 이중성과 유연성의 산물이다. 국내 일부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예상 외로 정직하고 숨김없는 성격의 소유자란 평가를 내리고 있으나 권력투쟁 과정에서의 숙청 잔혹사를 기억한다면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피상적이고 위험한 인식이다.

김정은으로선 문재인정부가 역투하는 남북 화해에 편승해 비핵화의 화살을 피하고, 군사 분야의 각종 전리품을 챙길 수 있는 손해 없는 게임이다. 특히 문정부와의 우리민족끼리 공조를 매개로 한국 국민들의 내부 분열과 안보의식 약화를 확산시켜 북한 관점에서의 한반도 통일을 위한 결정적 시기를 노릴 수도 있다.

그에게 큰 걸림돌은 주한미군인데, 향후 핵·미사일을 폐기하는 조건으로 미군 철수나 평화유지군으로 위상을 변경하는 빅딜을 시도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의 ‘평화협정 체결 시 미군 철수 의제 가능’ 발언을 흘려들을 수 없는 이유다. 외신들은 남북 정상회담을 ‘위험한 기회(risky opportunity)’로 표현하는가 하면 ‘평양이 던진 미끼를 한국이 덥석 물었다’(뉴욕타임스)고도 묘사했다. 심지어 문 대통령이 비핵화보다 남북을 연방으로 유도하는 데 더 많은 관심과 비용을 투입할 수 있음을 경계한다. 급변하는 비상 국면에서 국민들의 냉철한 현실 인식이 요구된다.

홍관희(성균관대 초빙교수·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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