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남혁상]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기대 기사의 사진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6·25전쟁 정전협정이 체결됐을 당시엔 정전체제가 65년이나 지속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3개월 내 정치회의를 소집해 한국으로부터 모든 외국 군대 철수 및 평화적 해결 문제를 협의한다”는 문구에 따라 곧 이 문제가 매듭지어질 줄 기대했던 탓이다. 하지만 이듬해인 54년 스위스 제네바 정치회담이 성과 없이 끝나면서 반세기 넘게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한반도에서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정전협정에 서명한 사람은 미국을 대표한 마크 웨인 클라크 유엔군 총사령관, 김일성 인민군 최고사령관, 펑더화이 중국 인민지원군 사령관 3명이었다. 한국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승만 대통령이 정전협정을 끝내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는 90년대까지 북한이 남측은 정전협정 대상자가 아니라고 주장한 빌미가 됐다.

27일 판문점에서 남북의 최고 지도자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을 공동 발표했다. 두 정상은 판문점 선언 3조 3항에서 ‘남북이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한다’고 했다. 2007년 10·4 정상선언 당시 불명확했던 종전선언 추진의 시한을 연내로, 3자 또는 4자회담 참여국가를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종전선언은 구속력 있는 선언은 아니다. 하지만 평화협정 체결을 위해선 전쟁이 끝났다는 정치적 의지를 내보이는 차원에서 필요하다. 평화협정으로 가기 위해선 실제로 거쳐야 할 많은 절차가 있지만 남북 정상이 일단 확고한 의지를 선언한 만큼 그 의미는 클 수밖에 없다. 남북 정상의 선언과 약속이 그대로 추진된다면 한반도의 정전체제는 65년 역사를 마무리하고 평화체제라는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게 된다. 11년 전 남북 정상이 합의했던 종전선언의 의미와 절차를 둘러싸고 나라 안팎에서 논란이 벌어졌던 것에 비하면 현재 흐름은 훨씬 나아졌다.

물론 종전선언과 평화체제 전환을 위한 대전제는 북한의 비핵화다. 그런 만큼 당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번 회담에서 명확한 비핵화 의지를 표명하는 게 회담의 성공 조건이라는 시각도 있었다.

남북 정상은 판문점 선언에 ‘완전한 비핵화를 통한 핵 없는 한반도’를 포함시켰다. 물론 이 문구가 비핵화 보장을 담보하는 건 아니지만 김 위원장으로선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 이행을 요구하는 미국에 일단 어느 정도의 답례는 해준 것이다. 비핵화의 구체적 단계는 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담판에서 이뤄질 듯하다.

그럼에도 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밝힌 메시지는 의미심장하다. 그는 “앞으로 자주 만나 미국과 신뢰가 쌓이고 종전과 불가침을 약속하면 왜 우리가 핵을 가지고 어렵게 살겠느냐”고 했다. 그는 트레이드마크 같았던 ‘핵·경제 병진노선’ 대신 ‘경제건설 총력집중’으로 전환도 선언했다.

물론 모든 것은 말보다는 행동, 결과로 보여줘야 한다. 북한은 길게 볼 것도 없이 90년대 이후만 보더라도 남북 및 국제사회와의 많은 합의와 약속을 파기해 왔다. 그럴 때마다 그 책임은 자신들이 아닌 우리 정부와 미국에 전가했다. 회담과 협상을 하면서도 뒤로는 핵능력, 탄도미사일 기술을 고도화시켰다.

하지만 이제는 대결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자는 김 위원장의 발언은 과거 북한이 반복했던 것과는 다를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남북 정상의 모든 합의와 약속이 이뤄진다면 적어도 가을에는 비핵화와 평화체제로 가는 밑그림이 그려질 것으로 보인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지만 2018년 봄을 맞은 한반도는 누구도 가보지 못한 새로운 길을 갈 채비를 하고 있다. 물론 그 길엔 예상치 못한 걸림돌과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엔 잠시 의구심을 접고 한반도 정세의 대전환을 기대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남혁상 정치부 차장 hs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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