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칼럼] 선언적이 아닌 실질적 평화를 향해 기사의 사진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 1차 관문 열렸지만 북한의 비핵화 이행이 난제
문재인정부가 북한과 미국 사이의 입장차 좁혀 나가야
북·미 정상회담 끝나도 검증·폐기 절차 쉽지 않아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평화의 신호탄이 쏘아 올려졌다. 주인공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다. 두 정상은 4·27 회담에서 한반도에 더는 전쟁은 없으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다고 천명했다. ‘판문점 선언’에는 정기적인 정상회담, 적대행위 전면 중단, 서해평화수역 조성, 단계적 군축 실현, 8·15 이산가족 상봉 등이 포함됐다.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목표를 확인하였다’는 문구도 들어갔다. 한반도 평화체제로 들어가는 1차 관문이 열린 셈이다.

한반도에 전쟁 위기가 한창이던 지난해 말과 비교할 때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그 중심에 김정은이 있다. 잔혹한 독재자, 로켓맨으로 통하던 그는 세계 이목이 집중된 판문점 회담에서 할아버지(김일성)와 아버지(김정일)처럼 거침없는 언행으로 긍정적인 인상을 심는 데 성공했다. ‘돌아온 탕아’의 대변신이다. 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호평은 물론 그의 언변에 감격해하는 국민들도 적지 않다.

김정은이 보인 자신감은 어디에 근거한 걸까. 핵무력 완성일 것이다. 종전까지 그의 관심사가 어떻게든 핵무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면, 이젠 완성된 핵을 제대로 활용해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쪽으로 바뀌었다. 수십기로 추정되는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보유했다는 사실은 미국이나 국제사회와의 협상에서 김정일보다 훨씬 큰 카드를 쥐고 있다는 의미다. 그 카드에는 김정은의 생존, 나아가 김씨 왕조의 생존이 달려 있다. 그래서 그 카드를 포기시키는 작업은 간단치 않을 것이다.

첫 시험대가 북·미 정상회담이다. 한반도 비핵화의 커다란 물줄기가 정해지는 역사적인 담판이다. 김정은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에서도 핵무기라는 든든한 뒷배를 믿고 배짱을 내밀 가능성이 크다. 군사적 위협을 제거하고, 체제를 보장해주면 핵을 갖고 있을 이유가 없다는 ‘조건부 비핵화’도 거론할 것이다. 다른 건 포기해도 보유 중인 핵무기는 내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며, 동결-불능화-폐기 단계마다 반대급부를 요구할 수도 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완전한 비핵화는 북한이 핵무기를 없애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완료해야 경제적 지원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북한의 과거 핵, 현재 핵, 미래 핵 모두 이른 시일 내에 폐기되기를 원하고 있다. 간극이 크다. 하지만 결렬의 부담 역시 엄청나다. 모처럼 조성된 평화국면이 군사적 대치국면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이를 종합해 볼 때 북·미 정상은 판문점 선언에 명시된 ‘완전한 비핵화’를 구체화하는 합의문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고르디우스 매듭 끊기처럼 단칼에 북핵을 폐기하는 게 아니라 비핵화 타임테이블이 담긴 합의문을 채택하고, 이행 방안은 추가 실무 협상을 통해 절충해 나가기로 의견을 모을 공산이 크다. 북핵 동결-폐기가 약속대로 진행될 경우를 가정한 상응 조치들도 윤곽을 드러낼 듯하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나더라도 어려운 문제들이 기다리고 있다. 북핵 검증 및 폐기 문제다. 두 정상이 비핵화 합의를 이룬다면 북한은 핵무기를 얼마나 갖고 있으며, 언제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었으며, 가동 중인 핵시설은 이런 것들이 있다고 자세하게 보고해야 한다. 이어 보고 내용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 등의 무제한적인 사찰을 받아들이고 핵무기 핵물질 핵시설에 대한 봉인과 감시 카메라 설치 등 불능화 단계를 거쳐 궁극적으로 폐기 수순을 밟아야 한다. 이런 세부적인 협의 및 이행은 지난한 일들이다. 자칫 잘못하면 정상 간 합의마저 수포로 만들 수 있는 민감한 과정들이다.

김정은은 이를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오늘의 만남과 성과는 시작에 불과하고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이다. 앞길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고 발언한 점은 이를 시사한다. 자신의 집권 기간은 물론 대대손손 체제를 보장받는 확고한 조치를 따내기 위한 밑그림이 거의 마무리됐다는 느낌이다. 그 그림대로 진행되지 않을 경우 다시 문을 걸어 잠그고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 여부는 북한의 비핵화에 달려 있다. 종전 선언이나 평화협정 체결도 비핵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의미가 반감될 것이다. 비핵화라는 총론에는 동의하나, 어떻게라는 각론에 차이를 보이고 있는 북한과 미국 입장차를 좁혀 나가는 게 문재인정부의 당면 과제다. 선언적 평화가 아닌 실질적 평화에 이르기까지는 먼 길을 가야 한다.

김진홍 편집인 j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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