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이창현] 김정은의 미디어 프레임 기사의 사진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은 시작부터 끝까지 생방송으로 전달됐다. 지난 65년간 분단의 상징이었던 판문점은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평화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얼마 전까지도 한반도에 핵전쟁의 위기가 고조됐기에 전 세계가 판문점을 주시했다. 특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TV 생방송을 통해 서방 언론에 처음 공개되는 것이어서 더욱 관심이 높았다. ‘동토의 왕국’에 있는 ‘은둔의 독재자’ ‘미치광이’라고 알려졌던 김 위원장의 일거수일투족은 카메라 셔터 소리 등 현장음과 함께 세계로 생생하게 전달됐다.

생방송은 김 위원장이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판문각에 등장하기 전부터 시작돼 늦은 밤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으로 되돌아가고 나서야 끝났다. 12시간 동안 이어진 김 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의 판문점 정상회담은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되고 예고된 프로그램이었다. 판문점은 생방송을 위한 스튜디오가 됐고 전 세계 방송들은 역사적 정상회담을 앞 다퉈 실시간으로 전달했다. 생방송에는 남북 정상이 손을 마주 잡는 모습과 함께 축배를 들며 흥겨워하는 모습도 나왔다. 정상회담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도보다리 위 벤치에서 남북 정상이 배석자 없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장면도 볼 수 있었다. 김정숙 여사와 이설주 여사가 만찬장에서 포옹하는 장면도 있었다. 마지막 환송연에서는 모든 참석자들이 고향의 봄을 함께 불렀다.

미디어학자인 다얀과 캐츠의 개념으로 풀어보면 이번 정상회담은 전형적인 ‘미디어 이벤트’의 성격을 갖는다. 그들은 미디어 이벤트의 유형을 경쟁형과 정복형, 그리고 대관형으로 나눴는데 회담 생방송에는 이들 유형이 모두 담겨 있다. 생방송을 통해 사람들은 판문점 체제에 내재돼 있는 남북 간 경쟁을 체감했다. 5㎝ 높이의 군사분계선을 두 정상이 함께 넘는 순간 긴장했고, 판문점 체제의 일촉즉발 긴장상태를 떠올리기도 했다. 남북 정상이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으면서 분단의 시대가 마감되고, 통일의 시대가 열린다는 것을 예고했다. 만찬 이후 축하 공연은 판문점 선언의 성공을 자축하는 것이다. 미디어 이벤트로 본다면 엘리자베스 여왕의 대관식과 같은 환호의 모습이었다.

미디어 이벤트는 ‘인물을 영웅으로 만들고 극적이고 의례적인 의미를 부여한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이번 이벤트를 통해 미디어 프레임이 ‘정상국가의 정상지도자’로 바뀌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번 정상회담은 보통의 미디어 이벤트에서 인물을 영웅으로 만드는 것보다 더 드라마틱했다. 서구의 미디어가 이제까지 미치광이나 악당의 프레임으로 김 위원장의 이미지를 만들어 왔었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북한은 비정상국가였고, 김 위원장은 비정상 지도자로 그려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런 이미지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그의 말폭탄은 할리우드 이미지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CNN 등의 뉴스 미디어는 이를 기정사실화했다. 전 세계의 시민들은 트럼프와 김정은의 말폭탄 교환이 한반도에서 핵전쟁을 초래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을 가졌다.

할리우드에서 악당으로 지목한 국가의 지도자는 하나둘씩 사라져 갔다. 냉전시대 악당의 상징은 한때 구소련과 동독이었고, 이후에는 이슬람 국가들로 변화해 왔다. 리비아의 카다피와 이라크의 후세인이 할리우드에서 악당이 된 후에 사라졌고 김 위원장이 그 역할을 이어받는 듯했다. 그런데 남북 정상회담 생중계 방송에 ‘악당 김정은’은 없었다. 많은 시청자들이 생방송을 통해 눈과 귀로 실감했다. 김정은의 미디어 프레임이 바뀌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과거의 국제적 미디어 이벤트가 그러했듯이 이번 생방송은 김 위원장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었다. 이것은 새로운 기억을 만들며 또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갈 것이다. 판문점 정상회담 생중계는 분단시대의 정치세력과 공생해 왔던 냉전적 미디어 프레임의 종언을 예고하는 이벤트였다.

이창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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