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준 칼럼] 보수의 봄 기사의 사진
김정은의 “어렵게”란 말은 제재 효과를 인정한 것이고,
이는 보수진영 방법론이 절반은 맞았다는 뜻
보수, 지지층에게 당당히 설명하고 평가도 받아내야
반대를 위한 반대를 넘어 유연함 발휘하기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했던 말 중 세 가지가 귀에 들어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에 오시면 솔직히 걱정스러운 게 우리 교통이 불비해서 불편을 드릴 것 같습니다.” 그는 “평창 고속열차가 좋다더라”며 “남측 환경에 있다가 북에 오면 민망스러울 수 있겠다”고 덧붙였다. 남과 북을 비교하면서 북한의 낙후된 인프라를 인정했다. 통 큰 것을 좋아한 아버지처럼 화끈한 말을 앞세울 줄 알았는데 회담 첫머리에 ‘북이 잘살지 못한다’는 쑥스러움을 내비쳤다. 좀 의외였다.

“무력을 사용한다면 제 손으로 제 눈을 찌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는 전쟁 의사가 없음을 이렇게 강조했다. “미국도 내가 남쪽과 태평양으로 핵을 쏘거나 미국을 겨냥해 그럴 사람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란 발언과 닿아 있다. 우리가 그동안 수없이 추론했던 북한의 핵 개발 이유를 스스로 답한 셈이다. 핵과 미사일은 실제 쏘려고 만든 게 아니라 반대급부를 얻는 게 목적이었다고 털어놨다. 핵을 사용하면 자신부터 죽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가장 의미심장한 말은 이것이었다. “왜 우리가 핵을 가지고 어렵게 살겠습니까.” 미국과 신뢰가 쌓이고 종전과 불가침을 약속하면 핵을 갖고 있을 이유가 없다고 했다. 나는 ‘어렵게’라는 표현이 눈에 들어왔다. 가공할 무기를 가졌는데 사는 게 어려워지는 건 경제 제재 때문이다. 서둘러 대화 테이블에 나온 이유 중 하나는 분명해졌다. 제재는 위력을 발휘했고, 핵 개발에 경제적 대가를 치르게 한 방법은 옳았다. 그것을 주장해 온 한국의 보수 진영은 지금 이렇게 말해야 한다. “거봐라. 내 말대로 되고 있지 않느냐!”

얼마 전 이 지면에 북한의 변화는 대화와 제재의 합작품이란 글을 썼다. 햇볕정책 10년, 압박정책 9년 만에 찾아온 북핵 해결의 기회는 절묘하다. 강력한 대북 제재가 없었다면 속도전 하듯 국제무대로 나오려 했을 리 없고, 지속적인 대화 주문이 없었다면 남쪽을 향해 성큼 손을 내밀지도 않았을 테다. 김 위원장의 ‘어렵게’란 말은 제재를 받은 당사자가 제재의 효과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회담 성과의 절반은 이 땅의 보수에게 공이 돌아가야 한다.

국민은 항상 정치보다 앞서간다. 정상회담 이후 여론조사에서 결과를 긍정적으로 본다는 답변이 80%를 넘었다. 진보 진영의 비중만으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수치다. 보수적인 국민도 많은 수가 회담이 잘됐다고 평가하며 향후 구체적 결과물에 기대하고 있다. 대북 압박과 제재를 주문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그동안 내온 목소리에 문재인정부는 고마워하는 게 옳고 앞으로도 귀담아듣는 게 맞다.

청와대는 초당적 합의에 의한 판문점 선언 비준을 추진하고 있다. 보수 야당이 빠진 ‘반쪽 비준’은 안 하겠다고 방침을 정해 다행스럽다. 이 선언의 효력은 정권이 바뀌어도 유지돼야 한다. 문 대통령과 여당이 치열하게 야당을 설득하기 바란다. 국회에 찾아가 설명하고 야당 대표와 만나고 요구를 반영해 초당적 비준을 반드시 성사시키면 좋겠다. 그것은 판문점 선언의 성과를 인정해준 보수 진영 국민에게 예의를 갖추는 길이기도 하다.

바른미래당 유승민 공동대표는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을 말했다. 적절한 시점에 경제학자 앨프리드 마셜의 경구를 꺼내들었다. “완전한 비핵화가 문서화된 것은 평가하지만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 약속이 없다. 이제 시작이며 갈 길이 멀다”고 했다. 뜨거운 가슴으로 대화할 때 누군가는 차가운 머리로 돌다리를 두드려봐야 한다. 문재인정부와 야당은 이런 역할 분담을 통해 평화의 길을 굴러가는 수레의 두 바퀴가 될 수 있다.

보수 정치권은 지금 지혜가 필요하다. 북한과 전쟁해야 한다고 말해온 게 아니지 않은가. 목표는 평화적 해결이었고 그것을 위해 제시한 보수의 방법론이 먹혀들었다. 평화 여정에 충분한 지분이 있음을 지지자들에게 당당히 설명하고 평가를 받아내라. 남경필 하태경 유정복 김태호 등 이미 그렇게 방향을 잡은 이들이 보인다. 상대방이 못해야 내가 사는 낡은 정치를 벗어버리기 좋은 기회가 왔다.

한반도는 대전환의 초입에 들어섰다. 북핵이란 용어를 지우고 남북 대결을 종식하려 한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초라한 말로 탓에 한국의 보수정치는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지키려는 가치가 너무도 확고한 보수의 미덕은 그것을 위해 발휘하는 유연함에 있다. 보수 일각의 ‘반대를 위한 반대’를 뛰어넘어 이 미덕이 살아나기를 기대한다. 그래야 한반도의 봄과 함께 ‘보수의 봄’도 앞당겨질 수 있을 것이다.

태원준 온라인뉴스부장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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