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송세영] 귀환불능점 기사의 사진
운항 중인 항공기가 남은 연료로는 출발점으로 되돌아올 수 없는 지점을 귀환불능점(the point of no return)이라 한다. 이 지점을 넘어서면 뒤를 돌아보는 건 의미가 없다. 목적지로 갈 수 있다면 가야 하고 아니라면 어디든 갈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4·27 판문점 선언을 발표하면서 “이제 우리는 결코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라 공언했다. 남북관계가 귀환불능점을 지났다는 선언이다. 북·미 정상회담과 북핵 폐기 여부 등 복잡한 변수들을 고려할 때 문 대통령의 발언은 사실에 대한 언급이 아니라 주체적 의지의 표현으로 보는 게 타당해 보인다.

문 대통령의 발표를 지켜보며 뇌리에 떠오른 사람이 하나 있었다. 지난 3월 22일 자신의 구속영장이 발부된 직후 “이런 세상이 올 줄 몰랐다”고 한탄했다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그의 말은 이제 되돌아갈 수 없는, 되돌아가서도 안 되는 구시대를 상징하는 가장 극적인 표현이 아닐까 싶다.

한국 사회는 여러 부문에서 구시대로의 귀환불능점을 넘어섰다. 가까운 과거를 보면 1987년 6월 귀환불능점을 한 차례 지났다. 총칼로 헌법과 법률, 민의를 짓밟은 초법적 군사 쿠데타와 이를 통해 탄생한 군사정권의 시대가 이때 종지부를 찍었다. 어떤 명분, 어떤 상황이든 군인들이 불법으로, 무력을 사용해 정권을 찬탈하는 시대로 돌아가는 일은 결코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87년 개헌으로 민주주의의 형식적·제도적 틀은 갖췄지만 내용적으로는 미완성이었다. 대통령의 권한은 제왕적이었고 국가기관들은 대통령과 정권의 사익을 위해 불법적으로 민간인을 사찰하고 반대세력을 탄압했다. 부패와 특권, 반칙도 횡행했다. 김대중·노무현정부 10년 동안에도 귀환불능점을 지나지 못했다. 정권이 바뀌자마자 구시대로 회귀했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은 권력과 함께 영원히 비밀에 부칠 수 있을 줄 알았던 국정농단의 진상이 ‘적폐청산’이라는 이름 아래 백일하에 드러났다. 책임자들과 적극 가담자들이 줄줄이 법정에 섰다.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같은 권력기관이 다시 정권의 이익을 위해 복무한다면 국민들이 이전처럼 무서워서 눈감아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번에도 정권이 바뀌면 과거로 회귀할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정권교체 여부와 무관하게 귀환불능점을 향해 가는 도도한 시대적 흐름이 존재한다.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대표적이다. 각론을 보면 문제점도 있고 법 시행으로 하루아침에 부정청탁과 금품수수 관행이 사라진 것도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여기에 녹아 있는 시대정신이다. 눈곱만한 권력이라도 있으면 상납과 접대를 당연시하고 공정·투명한 경쟁보다 청탁이 만연했던 시대와 결별해야 한다는 국민적 명령이 김영란법을 만들어냈다.

을들의 반란이라 불리는 갑질 폭로가 본격화된 것도 지난 정권 때였다. 이는 최근 들어 미투 운동으로, 재벌 총수 일가의 횡포와 불법에 대한 고발로 이어졌다. 돈과 권력, 배경에 기대어 불법과 반칙을 일삼고 인권을 짓밟는 행태도 머지않아 구시대의 유물로 남을 것이다. 성폭력 가해자는 승승장구하는데 피해자는 몸과 마음의 상처를 안고 숨죽인 채 지내야 하는 일도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오는 7월에는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또 다른 귀환불능점이 기다리고 있다. 야근과 잔업에 지쳐 가정을 돌보지 못하는 일은 상상도 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기계부품의 조합인 항공기에 적용되는 물리법칙에선 귀환불능점이 절대적 의미를 갖는다. 살아 있는 인간들의 행위의 결정체인 역사와 시대는 다르다. 민주국가에 독재정권이 등장하거나 인권선진국에 극우정권이 들어서는 일도 없지 않다. 지금 이 시대를 권위주의와 부패, 특권과 반칙, 대결과 분쟁의 구시대로 되돌아갈 수 없는 귀환불능점으로 만드는 것은 국민들의 의지와 노력에 달려 있다.

송세영 사회부장 sysoh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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