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수의 감성노트] 자기 비난과 반추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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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대화를 가장 많이 나누는 상대는 누구일까. 엄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아버지? 머리가 굵어지면 주로 친구와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면 배우자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워크홀릭이라면 가족보다 직장 동료와의 대화 시간이 더 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우리가 말을 가장 자주 주고받는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일상에서 의식하지 못할 때가 많겠지만 사람은 누구나 내면의 자아와 끊임없이 대화한다. 이런 걸 두고 ‘자기 대화’라고 부른다.

자기 대화를 세밀하게 관찰하면 그 사람을 지배하는 감정을 알 수 있다. 낙관적인 사람은 쉴 새 없이 자신을 향해 “파이팅”을 외친다. 위기가 찾아오고, 마음이 흔들려도 “괜찮다”라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해도 “최선을 다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가족이, 친구가, 연인이 말해주지 않아도 자신을 위로할 줄 안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불안해지고 우울을 달고 사는 사람들의 자기 대화는 다르다. 작은 실수만 해도 금방 우울해지고 무기력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는 이십대 직장 여성이 상담실을 찾아왔다. 상사에게 보고해야 할 업무를 깜빡 잊어 버렸고 그것 때문에 질책을 받았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 처하면 누구나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건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깊은 슬럼프에 빠졌다. 업무에 차질을 빚은 것도 아닌데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다. “나 자신이 밉고 싫다”고 자책했고, “아무 일도 못 하겠다”며 의욕마저 잃어 버렸다.

실수는 누구나 한다. 어디 실수뿐이랴. 알게 모르게 잘못을 저지르고 큰 성공보다 작은 실패를 우리는 더 자주 경험한다. 완벽해지려고 아무리 애써도 실수와 실패는 반드시 따르기 마련이다. 누구나 그렇다. 다만 그럴 때 ‘자기 자신에게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사람마다 다를 뿐이다.

우울증 환자들의 특징적인 사고방식 두 가지를 꼽으라고 하면, 그 첫 번째가 자기 비난(self-criticism)이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자신의 불완전성을 꾸짖고, 타고난 약점을 비난하며, 무능함을 탓하는 것이다. 작은 실수에도 “나는 안 돼! 나는 바보 같아!”라고 스스로에게 악담을 쏟아낸다. 작은 실패에도 “나는 뭘 해도 안 돼. 해 봤자 소용없어”라고 자기를 책망한다.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자동적으로 비난의 목소리가 먼저 떠올라 금방 우울해지고 쉽게 슬럼프에 빠진다.

“내가 왜 그렇게 했을까, 그렇게 하지 않았어야 했는데”라고 하며 과거 기억을 되새김질하는 것을 반추(rumination)라고 한다. 우울증 환자의 머릿속에서는 반추와 자기 비난이 짝을 이뤄 맴도는 경우가 흔하다. 지난 일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건 중요하다. 반성은 자기 행동을 검토해서 목표를 향해 꾸준히 나아갈 수 있게 만드는 자기 조절력의 필수 구성 요소다. 하지만 반성이 반추로 이어지면 곤란하다. 실수를 떠올리며 교훈을 얻고 해결책을 찾으면 반성이다. 지나간 잘못만 곱씹으면 반추다. 반성은 기운을 되찾게 하지만, 반추는 하면 할수록 우울해진다.

삶이라는 큰 그림에서 보면 실수는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사람들의 인생을 통틀어 보면 99%의 무난함과 간혹 찾아오는 1%의 탁월한 성취, 그리고 실수와 실패들로 나머지 1%가 채워지게 마련이다. 태어나 죽을 때까지의 긴 시간의 관점으로 보면 실수는 작은 티끌로 희석된다. 설령 큰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충분히 상쇄할 수 있다. 한 번의 실패로 지난 세월 동안 이뤄냈던 성과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비록 지금 당장은 괴롭더라도 자신을 멀찍이 떨어뜨려 놓고 봐야 덜 우울해진다.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자책하고 우울에 빠져 버린다면 자기 자신과 나누는 내면의 대화를 점검해봐야 한다. 자기 비난의 목소리에 휘둘리고 있는 게 아닌가를 확인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 현실, 마음을 스스로 괴롭게 만들지는 말아야 한다. 자기 대화가 부정적인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면 이렇게 바꿔 말해 보자. “아냐, 그래도 나는 지금까지 꽤 열심히, 꽤 잘 해 왔어. 지금의 실수는 아주 작은 흠집에 불과해. 멀리서 보면 잘 보이지도 않아. 앞으로 더 잘하면 돼.” 자신에게 실수할 자유를 주고 일을 망치더라도 따뜻하게 스스로를 안아줄 수 있어야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다. 실수 한 번 했다고 털썩 주저앉아 버려선 안 된다.

김병수 정신과 전문의

삽화=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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