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용백] 전옥서(典獄署) 기사의 사진
서울 지하철 1호선 종각역 5번출구와 6번출구 지상의 중간지점에 지난달 24일 제막된 ‘녹두장군’ 전봉준(1855∼1895)의 구릿빛 좌상(坐像)이 있다. 내외국인들의 눈길을 끄는 명물이 됐다.

하지만 1895년 동학농민혁명 때 동학농민군의 최고 지도자였던 전봉준이 시대를 뛰어넘어 형형한 눈빛으로 왜 종로 네거리에 앉아 있는지 의아스러움이 없진 않다. 궁금증을 해소하려면 좀 더 주변을 살펴야 한다. 우선 동상의 좌대 뒤쪽에 붙은 설명을 읽고 전옥서를 이해해야 한다. 종각역 6번출구를 나와 오른쪽 도로 옆 화단을 보면 검은색 표석과 함께 최근 세워진 듯한 관광안내판이 서 있다. 조선시대 구치소인 전옥서가 있던 자리(典獄署址)를 알리는 돌과 안내판이다. 표석에는 ‘조선시대 죄인을 수감하였던 감옥으로 한말 항일 의병들이 옥고를 치르기도 했던 곳’이라고 아주 간략히 적혀 있다. 이런 표석 상태로는 행인들이 쉽게 찾기도 어렵다. 찾았다고 해도 옛날 감옥터가 갖는 역사적 이해나 상상을 자극할 것을 기대하기란 무리다. 표석 뒤에 세워진 관광안내판에 한글, 영어, 중국어, 일본어 4개 국어로 된 좀 더 자세한 설명도 여전히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전옥서는 지금의 서린동이 된 한성부 중부 서린방(瑞麟坊)에 위치했었다. 재판 과정에서 구류된 전옥서 미결수들은 지금의 세종문화회관 자리에 있던 형조(刑曹)로 심문을 받으러 다녔다. 주로 상민층 죄인들이 전옥서에서 죽거나 처형됐다. 공주 우금치에서 일본군에게 패한 전봉준도 서울로 압송된 후 그곳에 수감됐다가 처형된 것이다.

동상 제막일은 전봉준 순국 123년째인 날이었다. 전봉준 좌상은 일본영사관에서 조사를 받은 뒤 가마에 앉아 서울로 압송되던 모습의 사진을 바탕으로 제작됐다고 한다. 높이 2.8m 정도여서 위압적이지 않아 사람들이 그의 시선을 맞추는 게 크게 불편하지 않다.

동학농민혁명은 시대에 따라 동학란(東學亂) 등으로 표현되며 한스러운 세월을 견뎌내야 했었다. 2004년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제정으로 비로소 성격이 규정됐다. 2017년 말 특별법이 개정되면서 참여자와 유족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이 좀 더 열렸다. 전봉준 동상으로 동학농민혁명이란 역사적 사실과 전옥서가 종로 한복판에서 우리에게 새롭게 다가왔다. 역사적 사실과 상징물의 의미들이 단절돼 흩어지지 않게 연결하는 스토리들이 많아지길 기대한다.

김용백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턱을 쩍’ 한국당이 공개한 김성태 폭행 영상
김성태 단식장에 배달된 ‘피자' 주문자는?
여중생과 ‘성관계’ 하다 부모에게 딱 걸린 학원장
“욕먹을 각오” 광주 집단폭행 경찰의 항변들
어린이날 김정숙 여사의 ‘박터트리기’ 승부욕
“보복할거냐” 질문에 조현민의 표정
[포착] “아이쿠” 눈길가는 임종석-이설주 표정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