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한승주]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 기사의 사진
2018년 4월 27일 판문각 문이 열리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삼엄한 호위 속에 처음 모습을 드러내던 순간, 그를 둘러싼 경호원들이 어느새 모두 사라지고 김 위원장만이 뚜벅뚜벅 남쪽으로 걸어오던 순간, 군사분계선 앞에 선 문재인 대통령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감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크고 깊을 것이어서 감히 상상조차 안 된다.

김 위원장은 “정말 만감이 교차하는 속에 200m를 걸어왔다. 왜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렸나. 왜 이렇게 오기 힘들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북 분리선도 사람이 넘기 힘든 높이로 막힌 것도 아니고, 너무나 쉽게 넘어서 여기, 역사적인 이 자리까지 왔다”라고 말했다. 이런 말도 했다. “오늘 내가 다녀간 이 길로 북과 남의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되고….” 그렇다. 새삼 주목하게 된 군사분계선은 5㎝ 높이의 콘크리트 덩어리에 불과했다. 그 턱을 넘는 데는 그저 한 걸음이면 충분했다.

남북에 이어 이제 북·미 정상회담이 기다리고 있다. 누구도 쉽게 예상치 못했던 만남이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회담이다. 이왕이면 판문점에서 열렸으면 좋겠다. 상상해본다. 이번엔 김 위원장이 군사분계선 북쪽에 서 있다.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차에서 내려 200m를 혼자 걸어 군사분계선으로 이동한다. 김 위원장이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두 사람이 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손을 맞잡는다. 이어 트럼프가 이 선을 넘어 북한 땅을 밟는다. 이 역시 두고두고 길이 남을 명장면이 될 것이다.

이 길은 여기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 물리적인 길이 열리고, 닫혔던 마음이 열려야 한다. 김 위원장은 남북 정상회담에서 민망하지만 북한 도로 사정이 안 좋다고 털어놓았다. 평창 동계올림픽에 다녀온 이들에게 남한의 철도시스템이 좋다는 보고도 받았다고 했다. 남북경협이 진행될 경우 남북 간 철도 연결프로젝트가 추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작가 황석영은 2008년 ‘평화의 기차’를 제안했다. 전 세계 작가들이 프랑스 파리에서 출발해 서울까지 대륙을 횡단해 한 번에 오는 기차다. 도시를 거치면서 독일 베를린에서는 음악제를 하고, 평양에서는 평화선언, 비무장지대에서는 페스티벌을 연다. 이 구상을 들은 프랑스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르 클레지오는 “그 기차가 출발한다면 1등으로 타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황석영은 10년 전엔 무산된 평화열차 계획을 최근 다시 정부에 제안했다. 내년 광복절에 첫 기차가 출발한다는 목표다.

섣부른 상상이요 성급한 기대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잃어버린 11년 세월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수시로 만나자. 이제 다시 원점으로 오는 일이 없어야겠다”라는 김 위원장의 말을 들어보면 비관적인 것도 아니다. 남북 정상이 어느 때보다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고 미·중·일·러 주변국의 반응도 호의적이다. 무엇보다 시민들의 기대감이 크다.

한반도에 절호의 기회가 오고 있다. 너무 설렐 필요는 없지만 냉소적으로 진의를 의심할 것도 없다. 우리는 어쩌면 훗날 한반도 역사의 대전환점으로 기억될 봄을 온몸으로 맞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광화문에 모인 촛불이 그랬듯, 이번 남북 정상회담도 앞으로 상상도 못한 거대한 변화를 불러올 수도 있다. 세계사에 기록될 날들이 우리 곁을 지나고 있다. 이런 과정을 지켜볼 수 있는 우리는 행복한 세대다. 다가올 북·미 정상회담 또한 물밑 협상과정에서 진통이 있겠지만 세계가 깜짝 놀랄 만한 성과를 내길 기대해본다.

김 위원장이 군사분계선을 넘던 날, 우리는 미래로 발을 내디뎠다. 남북 경제와 사회도 앞으로 긍정적인 큰 변화가 있을 것이다. 그날 대통령의 건배사는 ‘남과 북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그날을 위하여’였다. 문재인의 길, 김정은의 길, 그리고 트럼프의 길. 그 길의 끝에서 아무도 가보지 않은 새 길이 시작되길 바란다.

한승주 편집국 부국장 sj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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