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육과 학대의 갈림길] 식습관 훈육, 강제로 먹이면 무죄·때리면 유죄? 기사의 사진
글 싣는 순서
<1부> 국내 실태
① 그때그때 다른 법원 판단
② 가정 내 훈육과 학대
③ 교육기관 내 훈육과 학대
④ 정서적 학대도 엄연한 위법
<2부> 해외 사례
<3부> 대안을 찾아서


훈육·학대 뚜렷한 기준 없어 체벌·의도·목적·정도 등 판례, 추상적 기준 나열 그쳐
비슷한 체벌에도 판결 엇갈려 다른 사안 비해 양형 통일 안돼


어린이집 교사 A씨는 ‘밥’을 훈육의 수단으로 사용했다. 하루는 3살짜리 아이가 밥을 제대로 먹지 않자 아이의 팔을 잡아당겼다. 숟가락을 쥔 아이 손을 강제로 끌어당긴 뒤 억지로 떠먹였다. 다른 아이가 밥을 먹기 싫다고 하자 식판을 치워버렸고 식사시간이 끝날 때까지 다른 친구들이 먹는 걸 가만히 앉아 지켜보게 했다. 몇몇 친구들이 식사를 끝내고 장난감을 갖고 놀고 있는데도 일어나지 못하게 하자 아이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A씨는 다른 날에도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원아 3명에게 배식을 제때 해주지 않았다. 한 아이는 배고픔을 참지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

보육교사 B씨는 아이가 식사 중에 숟가락을 머리 위로 올리자 “자세가 바르지 않다”며 혼을 냈다.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있던 아이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한 차례 때린 뒤 아이를 잡아당겨 일으켜 세웠다. 삿대질을 하며 나무라기도 했다.

두 사례는 모두 만 2∼3세 아이들에게 올바른 식사 습관을 들이기 위해 물리력을 행사한 경우다. 그러나 판결은 갈렸다. A씨의 행위는 정당한 훈육으로 인정받아 무죄로 판결됐고 B씨의 행위는 학대로 분류돼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A씨에 대해 재판부는 “일부 아동이 식사를 끝내고 식사장소를 벗어나 장난감을 갖고 놀고 있었음에도 약 10분 동안 피고인 옆에 앉아 있도록 한 행위는 훈육방법으로 적절하다고 할 수 없다”면서도 “정서적 학대행위라 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피고인의 훈육방법이 다소 과격하거나 부적절하다 해도 폭력이나 가혹행위의 정도에 이르지는 않은 점’ ‘이런 행위를 아동학대로 본다면 보육교사들의 정당한 훈육까지 위축시킬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했다. 반면 B씨에 대해서 법원은 “사회통념상 훈육을 위한 적정한 방법이나 수단의 한계를 넘어선 것으로서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을 저해할 위험 또는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했다.

이명숙 한국여성아동인권센터 대표 변호사는 7일 “밥을 강제로 먹이는 것과 엉덩이를 때리는 것 가운데 전자가 아동의 정서에 더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비슷한 정도의 학대인데도 실형부터 집행유예, 벌금, 무죄까지 다양한 판결이 나오는 게 현실”이라며 “사법부가 오락가락해 현장에서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국민일보가 집중 분석한 아동학대 판결문 85건 중 36건에서 ‘훈육’이나 ‘훈계’란 표현이 등장했다. 훈육과 학대의 경계가 모호함을 반증한다. 법원도 “가정이나 교육현장에서의 훈육 목적의 체벌 필요성이나 그 정도에 대해 사회적으로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은 사실(2015년 울산지법)”이라고 애로사항을 토로할 정도다.

기준 자체가 모호하다보니 판결이 사회통념에 기대는 경향도 짙었다. 현행 아동복지법은 학대에 대해 ‘아동의 신체에 손상을 주거나 신체의 건강 및 발달을 해치는 신체적 학대’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를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판례는 행위 자체보다 대체로 체벌의 의도와 목적, 정도 등을 기준으로 삼았다. 2015년 의정부지법은 아동학대 관련 판결 때 “훈육이 정당행위로 인정되려면 훈육방법이 원생의 교육에 있어 필요가 있고, 다른 교육적 수단·방법으로는 교정이 불가능해 부득이하게 행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다. 또 “훈육 방법 및 정도에 있어서도 사회통념상 비난받지 않을 객관적 타당성이 있는 방법이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기준 자체가 매우 추상적인 셈이다. 이세원 전주대 사회복지학과 객원교수는 “법에서 정해놓은 구체적인 기준이 없다 보니 법의 해석이 판사 개개인의 가치관과 경험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박창환 법무법인 원 변호사도 “아동학대 사건의 경우 다른 유형의 사안에 비해 양형이 통일되지 않은 편”이라고 말했다.

교사가 실제 위력을 행사한 경우에도 판결은 다양했다. 신체학대와 정서학대의 구분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대구지법은 지난 2월 식사 후 식기를 정리하지 않고 쌓아놓았다는 이유로 7∼13세 아이 4명에게 30분간 ‘엎드려뻗쳐’를 시키는 등의 혐의로 기소된 보육교사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이 행위가 “아동의 신체에 손상을 주는 학대”라고 판단했다. 반면 서울남부지법은 지난 1월 겁을 먹고 일어서는 아이의 목 뒤를 잡아 눌러 앉힌 후 턱을 잡고 숟가락으로 여러 차례 강제로 음식을 밀어 넣은 행위를 신체학대가 아닌 정서학대라고 판단했다. ‘엎드려뻗치기’는 신체학대이지만 목을 잡아 음식을 강제로 밀어 넣는 행위는 신체학대가 아닌 정서학대로 판단한 것이다. 박 변호사는 “신체적 학대행위에까지 이르지 않았다는 점이 감경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는 것을 고려할 때 양형이 적정하게 이뤄졌는지 의문이 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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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연 김성훈 기자 jaylee@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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