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육과 학대의 갈림길] 당신이 아이에게 한 일… 훈육일까 학대일까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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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 사건 때마다 여론 들끓지만 제대로 된 공론화 거친 적 없어
가정·학교·법원 등 현장은 혼란
해외서도 ‘매 없는 훈육’ 고민… 일부국가 아동 체벌금지법 도입
우리도 사회적 인식 간극 좁혀야

‘훈육을 위해선 체벌이 필요하다’ ‘모든 체벌은 학대다. 어떤 체벌도 허용돼선 안 된다’ ‘체벌뿐만 아니라 정서적 학대도 엄벌해야 한다’…. 2018년 대한민국에선 아동 훈육을 둘러싸고 양립 불가능한 주장들이 맞서고 있다. 정부 정책에서도, 법원 판결에서도, 양육과 교육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하면 잠깐 여론이 들끓을 뿐, 제대로 된 공론화 과정을 거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 사이 훈육하려다 아동학대범으로 전락해 법정에 서거나 체벌을 했는데도 훈육 목적이었다며 선처되는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국민일보는 훈육과 학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간극을 좁히고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기획연재를 시작한다.

2015년 12살이었던 현준(가명)이는 엄마의 내연남 A씨에게 훈육을 빙자한 학대를 당했다. 그해 겨울 A씨와 영화를 보러 가는 엄마에게 “나도 같이 가고 싶다”고 했다가 A씨에게서 뺨을 맞았다. A씨는 거실에서 잠들었다고 아이의 배를 발등으로 걷어찼고, 노트북이 고장 난 게 현준이 때문이라며 갈비뼈를 발꿈치로 가격했다. A씨는 아동학대 혐의로 기소됐지만 실형을 살지는 않았다.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 지난 1월 “현준이를 훈육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법원이 판단한 A씨의 죗값이었다.

때론 정서적 학대가 신체적 학대보다 더 큰 상처를 불러올 수도 있다. 어린이집 교사 지영(가명)씨는 2015년 10월 엄마와 헤어지기 싫다고 우는 20개월 된 원아의 양손을 붙잡고 다리로는 아이의 다리를 눌렀다. “너 울면 엄마 못 본다, 계속 울면 엄마한테 안 데려다줄 거야.” 지영씨가 윽박지르자 아이는 손톱으로 지영씨의 왼뺨을 긁었다. 같은 상황은 이튿날에도 반복됐다. 재판부는 지영씨의 행동이 정서적 학대 행위라고 판단했다. 체벌이 없었는데도 지영씨는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아이가 갑자기 욕을 하면 부모는 혼란스러워진다. 재훈(가명)씨는 지난해 11살 자녀와 텔레비전을 보다가 격분했다. 아이가 ‘X까고 있네’라고 욕을 했기 때문이다. 화가 난 재훈씨는 단소로 아이의 왼쪽 팔과 다리를 수차례 때려 2주간 안정을 취해야 하는 상처를 입혔다. 판사는 ‘훈육하다가 도가 지나쳐 학대에 이르게 된 점’은 유리한 정상, ‘이미 아동학대 행위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던 전력이 있는 점’은 불리한 정상이라고 봤다.

훈육의 상한선과 학대의 하한선은 존재할까. 한국 사회에는 이 모호한 경계에 대해 논의할 기회가 없었다. ‘칠곡계모 사건’ ‘울산계모 사건’처럼 극단적인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할 때 마다 법과 제도는 국가가 아동학대에 적극 개입하는 방향으로 전환됐다. 아이가 죽음에 이를 때까지 학대를 했을 때는 더욱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게 기본 방향이었다.

하지만 훈육과 학대의 모호한 경계에 대해선 누구도 답을 내려주지 않았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말이 통용되는 2018년 대한민국에는 ‘때려서라도 잘 키워 달라’는 부모와 ‘내 아이에게는 손도 대지 말라’는 부모가 같은 교실에 존재한다. 학대의 경중을 어떻게 따져야 하는지, 훈육의 의도는 어디까지 인정받을 수 있는지의 문제를 공론의 장에 올려야 할 때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만 겪는 문제는 아니다. 프랑스의 부모들도 대부분 아이에게 체벌을 가한 경험이 있다. 일본은 가려져 있던 아동학대에 관심이 쏟아지면서 아동학대 신고 건수가 늘고 있다. 몽골은 아시아에서 첫번째로 아동 체벌을 금지한 국가가 됐지만 여전히 ‘체벌 없는 훈육’에 대한 고민을 안고 있다. 주마다 차이가 있지만 캐나다에선 가정 내 체벌이 합법이다. 아동인권의 천국으로 불리는 스웨덴은 30여년 전 국민 대다수의 반대를 뚫고 아동체벌금지법을 도입했다. 현재 국민 10명 중 9명이 이 법을 지지하고 있다.

강동욱 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아동학대 사건을 거치면서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유엔 아동권리협약도 비준했지만 국민들의 인식이 달라지고 있는 건 최근”이라며 “제도나 법만으로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가 아닌 만큼 우리 사회의 전반적 문화, 여기서부터 변화가 시작돼야 한다”고 말했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

그래픽=안지나 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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