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수 칼럼] 27년 만의 남북 탁구단일팀 기사의 사진
여자단체전 우승한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 현장 취재의 추억
이번엔 선수단끼리 자발적으로 단일팀 구성해 이례적
대북제재 제외되는 스포츠·문화 교류부터 활성화해야

남북 여자탁구 단일팀이 최근 스웨덴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동메달을 땄다는 소식에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가 떠올랐다. 27년이 지났지만 현장에서 지켜본 당시 상황이 지금도 생생하다. 남측의 현정화 홍차옥, 북측의 이분희 유순복 등이 주축이 된 여자팀은 9회 연속 우승을 노리던 세계 최강 중국과 단체전 결승에서 맞붙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중국은 정말 이기기 힘든 상대였다. 그런데 다섯 경기 가운데 3승을 거두면 우승하는 결승전에서 단식 첫 경기부터 이변이 일어났다. 세계무대에서 무명이던 유순복이 세계 랭킹 1위인 ‘탁구마녀’ 덩야핑을 이긴 것이다. 이어 단식에서 현정화가 가오준을 이겨 우승이 눈앞에 다가온 듯했다. 하지만 복식에서 현정화-이분희가 덩야핑-가오준에게, 단식에서 현정화가 덩야핑에게 지는 바람에 승부가 원점으로 돌아갔다. 마지막 단식에서 유순복이 가오준을 이겼다. 단일팀이 시상대에 섰을 때 남과 북의 애국가 대신 아리랑이 울려 퍼졌다. 기자 초년병 시절이어선지 마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기사를 쓰지 못하고 감동만 먹고 있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 남과 북의 선수단은 46일 동안 동고동락했다. 같은 호텔에 묵으며 훈련을 같이하고 밥도 같이 먹었다. 대회가 끝나고 현정화와 이분희가 도쿄 프린스 호텔에서 헤어지며 우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볼 때는 덩달아 눈물이 났다. 그때도 봄 이맘때쯤이었다. 감동적인 영화 한편을 본 느낌이었는데, 나중에 실제로 이 일이 영화로 만들어졌다.

올해 스웨덴 대회에서 남북 여자탁구팀은 각각 단체 8강전에 올라 맞대결을 할 예정이었으나 전격적으로 단일팀 구성에 합의해 경기를 할 필요도 없이 4강에 올랐다. 비록 일본에 패해 4강까지 주어지는 동메달을 따는데 그쳤지만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에 이어 사상 네 번째로 단일팀을 구성한 의미가 있다. 남북의 선수단이 현장에서 단일팀을 구성키로 의견을 모으고 양측 정부에 연락하는 매우 이례적인 방식으로 성사됐다. 지바 대회 당시 남북 단일팀 코치였던 이유성 대한탁구협회 부회장은 “지난 27년 동안 남북 탁구계는 서로 신뢰를 쌓아 왔다. 남북 탁구만큼은 작은 통일을 이룬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남북 스포츠 교류는 남북관계 개선과 맞물려 있다.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이어 같은 해 6월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도 남북 단일팀을 이뤄 8강에 올랐다. 같은 해 12월 노태우정부는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했다.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 시절에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 2004년 아테네올림픽 등 주요 국제대회에서 모두 아홉 차례 남북 선수단의 개막식 공동 입장이 이뤄졌다. 남북 스포츠 교류의 맥이 끊겼던 이명박정부와 박근혜정부 때는 남북 관계가 대결 구도를 벗어나지 못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미국과 중국의 핑퐁외교도 세계탁구선수권대회가 인연이 됐다. 중국은 1971년 4월 열린 나고야 대회가 끝난 뒤 미국 선수단을 초청해 친선경기를 가졌다. 이를 계기로 그해 7월 헨리 키신저 미국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이 중국을 방문했다. 다음 해 2월에는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다. 결국 1979년 양국이 수교하는 열매를 맺는다. 만일 북한과 미국이 수교를 한다면 탁구 친선 경기부터 가질지도 모르겠다.

북한의 비핵화가 진전되기까지는 남북이 할 수 있는 것이 현실적으로 스포츠나 문화 교류밖에 없다. 국제사회가 결의한 대북 제재의 틀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경제 협력은 당분간 어렵다. 오는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탁구 농구 유도 정구 하키 카누 조정에서 남북 단일팀 구성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대한카누연맹은 6월에 한강에서, 7월에는 대동강에서 합동 전지훈련을 한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스포츠 분야뿐 아니라 개성 만월대 공동발굴과 겨레말 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 등 문화교류도 진행되길 기대한다. 북한의 핵 폐기가 이뤄질 때까지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최근 청와대가 판문점 선언 이행추진위원회 첫 회의를 열고 산림협력 연구 태스크포스를 발족하기로 한 것도 당장 가능한 교류부터 하겠다는 취지로 보인다. 산림협력은 통신·철도 등 대북 제재 위반 사항에서 제외된다.

북한의 비핵화가 실현되고 남북 경제교류가 진행된다면 북한은 물론 성장 한계에 부닥친 우리 경제에도 새로운 동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남북 간에 철도와 도로, 직항로가 연결되고 북한의 지하자원과 노동력을 활용하면 우리 경제의 활로를 열어 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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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수 논설위원 js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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