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고 없는 부산서 제2의 사역, 송용걸 목사 “이제는 ‘가나안 성도’ 돌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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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용걸 서울 신천교회 은퇴목사가 8일 서울 송파구 식당에서 자신의 40년 목회 여정을 설명하면서 최근 ‘가나안 성도’ 돌봄 사역에 뛰어든 배경을 말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송용걸(71) 목사는 황해도 피난민 출신이다. 6·25전쟁 때 부친을 잃었다. 1950년 당시 3세였던 송 목사는 뱃속에 남동생을 품은 만삭의 모친과 사선을 넘었다. 무일푼으로 월남한 모친은 중앙부인회와 대한모방 사감 등을 지내며 어려운 형편에도 빳빳한 지폐로 십일조 헌금을 드렸다.

총신대 1회 졸업생인 송 목사는 1966년 서울 영등포에서 고 옥한흠 목사와 공동으로 교회를 개척했다. 공단지역에 위치한 협성교회에는 돈을 벌기 위해 시골에서 갓 올라온 여공들이 대부분 출석했다.

송 목사는 “당시 옥 목사님은 ‘회개하라, 믿어라’ 등의 명령조 설교를 하지 않았다”면서 “대신 늘 ‘우리’라고 말하며 ‘하나님, 우리 너무 배고파요. 너무 피곤해서 못 견디겠어요’라며 성도들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교인들의 삶 속에서 뛰어 들어가 그들의 아픔을 껴안고 울며 기도했다”고 회고했다.

송 목사는 1977년 간호사였던 아내를 따라 도미(渡美), 로스앤젤레스 나성필라델비아교회에서 부교역자 생활을 시작했다. 80년엔 오렌지카운티 얼바인에 교회를 개척했다. 당시 그는 1000쪽이 넘는 전화번호부를 넘기며 A부터 Z까지 한국인 이름과 비슷하다 싶으면 편지를 썼다. 그중 14가구가 교회에 나왔다.

그는 “1년 만에 100명이 모일 정도로 심방과 기도에 집중했는데, 영혼구원 사역이 쉽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의 특별한 위로가 있었다”고 귀띔했다. 7년 뒤엔 다시 시카고 헤브론교회를 개척해 교회 대지면적 4만4628㎡(1만3500평)에 2000명이 모이는 공동체로 급성장했다.

송 목사는 “30년 만에 시카고 최대 한인교회가 된 후 하나님께선 ‘웃음은 넘치지만 기도의 눈물이 마른 조국교회를 섬겨야 한다’는 부담감을 주셨다”면서 “2007년 60세 때 아브라함처럼 갈 바를 알지 못하지만 믿음으로 발걸음을 옮기라는 말씀을 붙들고 교회에 사임하겠다고 폭탄선언을 해버렸다”고 웃었다. 그는 “교회가 거대해질수록 자칫 잘못하면 사유화 문제가 발생한다”면서 “성도들의 반대가 심해질수록 내가 떠날 때가 됐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안정적인 목회지를 박차고 나온 송 목사는 2008년 후임자 청빙문제로 어려움을 겪던 서울 신천교회에 부임했다. 그는 새벽기도회부터 주일 저녁예배까지 모든 설교를 맡았다. 부임 당시 1200여명이던 성도는 2200명으로 불어났다.

송 목사는 지난달 14일 한국 사역 10년을 마치고 은퇴했다. 제2의 사역은 아무런 연고도 없는 부산에서 펼친다. 부산 해운대고 건물을 빌려 올 가을부터 교회를 정하지 못하고 떠도는 이른바 ‘가나안 성도’를 돌볼 계획이다.

송 목사는 “재산 싸움 등으로 실망하고 교회를 떠난 성도들을 다시 초청하는 일에 남은 인생을 바칠 예정”이라며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교회, 1원도 안 남기고 헌금 전액을 모두 베푸는 그런 성경적 교회를 일구겠다”고 웃었다.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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