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육과 학대의 갈림길] 법원, 공부시키려 회초리 든 행위는 ‘무죄’?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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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싣는 순서
<1부> 국내 실태
① 그때그때 다른 법원 판단
② 가정 내 훈육과 학대
③ 교육기관 내 훈육과 학대
④ 정서적 학대도 엄연한 위법
<2부> 해외 사례
<3부> 대안을 찾아서


걷어차 멍들게 한 행위는 학대
민법상 훈육·학대의 경계는 친권의 ‘징계권’이 많이 좌우
“훈육에 매 필요 생각하지만 사랑의 매·학대 기준 애매모호 부모들 혼란”


#1. 지호(가명)는 8살이었던 2013년 봄부터 가을까지 금요일마다 새아빠에게 숙제검사를 받았다.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새아빠는 회초리로 지호의 손바닥이나 발바닥을 때렸다. 매주 토요일에는 한자시험을 보고 틀린 만큼 매를 맞아야 했다. 회초리를 피하는 지호에게 “남자답게 맞아, 인마” 하며 머리를 밀치기도 했다. 이때 지호는 책상 모서리에 오른쪽 눈 아래 부위를 찧어 멍이 들었다. 집에 늦게 들어온 날도 회초리로 발바닥을 맞았다. 차에 구토를 했다고 걷어차이기도 했다. 검찰은 이 사건을 아동학대로 보고 새아빠를 재판에 넘겼다.

법원의 생각은 달랐다. 재판부는 숙제검사나 한자시험 결과를 놓고 회초리를 든 행위는 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공부와 관련된 것이 아닌 이유로는 회초리로 때린 사실이 없는 점에 비춰보면 지호를 교육시키기 위한 목적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는 이유였다. 지호를 걷어차고 멍이 들게 한 것은 아동학대로 인정됐다. 몸에 손상을 주는 행위만 신체적 학대로 규정했던 구 아동복지법이 적용된 결과였다. 검찰은 “숙제를 제대로 못했다는 이유로 신체적 고통을 가하는 건 훈육이 될 수 없다”며 항소했지만 2심 재판부는 지난 1월 항소를 기각했다.

#2. 김모씨는 2015년 별거 중인 아내와 12살 아들이 사는 집을 찾아갔다. 문을 열라고 소란을 피우자 아내가 문을 열어줬고 부부는 곧 아이 양육문제로 언성을 높이며 다퉜다. 지켜보던 아들이 아빠에게 “빨리 나가라” “닥치고 꺼져”라고 쏘아붙였다. 김씨는 아들의 왼뺨을 때렸고 1m 길이의 청소도구로 허벅지도 때렸다.

김씨 역시 아동학대 혐의로 기소됐지만 무죄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욕설과 반말을 한 점과 자신에 대한 욕설에 화가 난 피고인이 피해자를 훈계할 의도로 체벌한 점을 고려했을 때 학대의 고의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공부를 시키기 위해 든 회초리는 학대가 아닐까. 아이가 자신에게 욕설을 했다고 뺨을 때린 건 훈육의 연장선일까. 두 판결은 재판부 내에서조차 가정 내 훈육과 학대의 경계가 모호함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분석된다. 훈육 목적이 있었는지, 수단이 정당했는지 정도가 경계를 가르는 열쇠로 지목되지만 이마저도 재판부 구성원의 성향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이명숙 한국여성아동인권센터 대표 변호사는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결국 사건을 담당하는 판사의 가치관이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가정 내 훈육과 학대의 경계는 민법상 친권의 ‘징계권’이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민법 915조는 ‘친권자는 그 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고 법원의 허가를 얻어 감화 또는 교정기관에 위탁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징계의 방식을 명시하지 않아 훈육 목적의 체벌을 사실상 법으로 용인한 셈이다.

특히 친권을 천륜과 동일시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징계권도 폭넓게 인정될 수밖에 없다. 학업 문제로 든 회초리와 욕설을 한 아이를 향한 폭력은 위법이 아니라고 본 법원의 판단도 여기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높다. 이유를 불문하고 모든 폭력을 금지한 아동복지법의 취지보다 친권자의 징계권이 우선시되는 것이다.

아동을 독립된 인격체로 보지 않는 한국의 문화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부모가 아이를 소유한다고 봤던 전통적 관점이 이어져온 한국 사회에선 다소 강압적인 훈육을 통해서라도 아이를 바르게 키워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장화정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은 “이제는 부모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 다른 방안을 찾는 게 필요하지 굳이 징계를 해가면서 부모 역할을 한다는 건 요즘의 상황과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친권의 개념은 미성년인 자녀에 대한 권리와 의무를 모두 포함하는데 권리만 강조되다보니 훈육 의도의 체벌이 학대로 이어지는 부작용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징계권을 아이를 체벌할 수 있는 권리로 왜곡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강동욱 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징계권=체벌’로 생각하는 건 잘못이다. 부모로서 자녀에 대한 훈육을 할 수 있는 권한이자 책임”이라고 말했다. 이명숙 변호사는 “징계권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설령 있다고 해도 아이를 때리는 걸 징계로 봐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훈육과 학대의 애매한 경계가 정리되지 않으면 부모는 혼란을 거듭할 수밖에 없다. 32개월 된 아들을 키우고 있는 신모(38·여)씨는 “인터넷으로 훈육과 아이 발달과정을 찾아보고 참고하지만 여전히 학대와 훈육의 기준이 모호한 것 같다”고 했다. 강압적 훈육에 반대했지만 아이가 떼쓰는 걸 보고 버릇없이 클 수 있겠다는 걱정이 든다고도 했다. 세 아이의 아빠인 장모(43)씨도 “아직까지는 아이와 문제가 생겨도 대화로 해결이 됐는데 12살인 큰애가 조금 더 크면 말로 안 되는 경우가 생길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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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주언 조민아 기자 eon@kmib.co.kr

삽화=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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