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지호일] 드루킹과 리틀 피플 기사의 사진
“겉모습에 속지 않도록 하세요. 현실이라는 건 언제나 단 하나뿐입니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Q84’는 여주인공 아오마메가 꽉 막힌 고속도로의 비상계단을 내려가 또 다른 세계에 들어서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계단의 존재를 알려준 택시기사는 실재와 가상을 혼동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현실의 1984년과는 살짝 어긋나 있고, 두 개의 달이 뜨는 기묘한 시공간을 아오마메는 1Q84라고 명명한다. ‘Q’는 의문(question mark)을 뜻하는 ‘Q’다.

2018년의 한국사회에도 잔뜩 Q가 붙은 존재가 불쑥 등장해 휘젓고 있다. 필명 드루킹. 경찰에 체포돼 언론에 이름이 공개된 것을 기점으로 그는 사이버 세상의 경계를 넘어와 현실 정치를 분탕하고 있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드루킹과 추종자들이 벌인 일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지만 그의 정체는 아직 더 많이 숨겨져 있는 것 같다. 드루킹은 어디서 왔고, 어떻게 힘을 키웠으며, 도대체 무엇을 하려 했나. 이에 대한 답은 수사로 확인돼야 할 핵심과는 거리가 있을 테지만 사안의 본질에는 더 가까울 수 있다.

드루킹은 처음 경제 분야 파워블로거로 명성을 얻었으며, 2009년부터 네이버 카페 ‘경제적 공진화 모임’(경공모)을 운영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송하비결’ ‘자미두수’ 같은 샤머니즘적 장치들을 동원해 예언가 행세를 하려 했다. 경공모 수뇌들의 종교적 색채도 짙어졌다. 2년 전 드루킹을 기소했던 검찰 관계자는 “사주쟁이 성격에 비주류적인 사고 성향이 결합된 형태라고 할까. 평범한 모임은 아니었다”고 기억했다.

인터넷 카페 모임을 종교집단 취급하는 건 오버 아니냐고? 그럼 드루킹이 경공모 핵심 성원들에게 돌린 ‘규약작성 기초자료’를 보자.

그는 ‘경공모는 공동체’라고 규정했다. 공동체의 이념은 ‘홍익인간 제세이화’ 사상이며, 이는 ‘자미두수의 우주철학에서 기원 한다’고 나와 있다. 종신제 매니저인 드루킹을 정점으로 회원 간 등급을 나눴으며, 집단생활을 할 ‘두루미 타운’ 건설 계획으로까지 이어진다. 기초 생활비와 주거, 교육, 의료가 무상으로 제공되는 유토피아를 짓겠다는 것이다.

구상으로 그쳤지만, 이쯤 되면 1Q84 속 사이비 종교집단 선구(先驅)의 모습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적극적인 부동산 매입 활동도 그중 하나야. 깨끗한 시설, 세련된 홍보, 인텔리전트한 이론, 엘리트 출신의 신자들, 스토익한 수행, 물질주의의 부정, 유기농법에 의한 농업…그런 건 철저히 계산된 이미지 사진 같은 거야.”(1Q84 1권 615쪽)

드루킹은 여기서 선구의 창시자이자 리더인 후카다와 유사한 위치에 놓인다. 소설에는 이형적 존재인 ‘리틀 피플’도 등장하는데, 이들은 세상에 침투해 음모를 꾸미고 인간심리를 지배하려는 존재들이다. 모니터 뒤에서 참과 거짓을 뒤섞어 타인의 생각을 조종하고, 현실 대중의 여론마저 움직이려 한 드루킹 세력을 리틀 피플에 대입하는 건 과한 걸까.

드루킹의 배후는 그래서 추적해도 나오지 않을 듯하다. 수많은 댓글을 조작하고, 정치후원금 납부를 지시한 주관자는 ‘교주’ 드루킹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회원들을 시켜 사이버 작업을 하고, 유력인사 포섭을 계속 꾀한 건 영력 확대를 위한 자가발전이자 추종자들에게 위엄을 드러내려는 방편이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드루킹의 관점에서 김경수 의원이든 다른 정치인이든 ‘포교 활동’을 위한 수단, 거점에 지나지 않았던 건 아닐까. 그는 나중을 위해 가능한 한 빚 받을 데를 많이 만들어 놓으려 한 것 아닐까. 물론 드루킹의 힘을 불법적으로 정치에 활용한 행위가 있었다면 그 부분은 수사를 거쳐 단죄돼야 할 터다.

지금 드루킹은 감방 안에서 자신이 만든 현실을 보며 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시 1Q84의 맨 앞장. “여기는 구경거리의 세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다 꾸며낸 것. 하지만 네가 나를 믿어준다면 모두 다 진짜가 될 거야.”

지호일 사회부 차장 blue5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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