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칼럼] 다시 읽는 김정은 신년사 기사의 사진
경제 발전 위해서라면 모든 핵 포기하겠다는 의중 담긴 대목 없어
낙관론에 들뜨지 말고 북핵의 완전한 폐기 때까지 차분하게 외교력 경주해야


평화 기운이 물씬 감도는 현재의 한반도 정세를 보고 있노라면 지난 1월 1일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신년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신년사를 계기로 한반도의 큰 물줄기가 초긴장에서 화해 무드로 180도 방향을 틀었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전문가들이 그의 신년사를 ‘신의 한 수’라고 평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래서 김정은 신년사를 다시 읽어봤다.

앞부분은 핵무력 완성에 대한 자신감으로 채워졌다. 2017년 최대 성과로 꼽힌 건 ‘국가핵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 성취’였다. 대륙간탄도미사일과 각종 핵 운반 수단, ‘초강력열핵무기(수소탄)’ 시험을 성공적으로 마쳐 되돌릴 수 없는 강력하고 믿음직한 전쟁억제력을 보유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나온 발언이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핵단추가 항상 놓여 있다”는 대미(對美) 위협이었다. 또 핵무력 완성으로 할아버지 김일성과 아버지 김정일의 염원을 풀어줬고, ‘평화수호의 강력한 보검’을 틀어쥐게 됐다고 자랑했다.

이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 일흔 돌인 올해 경제 부흥에 매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힌다. 핵 보유라는 역사적 승리를 새로운 발전의 도약대로 삼아 ‘혁명적인 총공세로 사회주의 강국 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승리를 쟁취하자’며 전력, 금속, 기계공업 등 온갖 분야에서의 성과를 독려했다.

그 다음에 남북관계를 언급한다. 후반부에서 “(한반도 주변의 험악한) 정세는 북과 남이 자주통일의 돌파구를 열기 위한 결정적인 대책을 세워나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며 남북관계를 개선해 올해를 ‘민족사에 특기할 사변적인 해’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문재인정부가 해야 할 일들을 열거했다. 한·미 군사훈련과 미국 핵장비들을 한반도에 끌어들이는 행위를 중지하고, 남북 현안은 우리 민족끼리의 원칙에서 푼다는 입장을 가져야 한다는 등등. 그리고 평창 동계올림픽 대표단 파견, 당국회담 개최 의사를 표명한 뒤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조국통일의 새 역사를 써 나갈 것”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는 핵 강국”이라면서 “2018년은 또 하나의 승리의 해가 될 것”이라고 신년사를 마무리했다.

신년사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건 핵무력 완성이 김일성과 김정일의 염원이었다는 점이다. 핵무력 완성을 ‘역사적 대업의 성취’라고 자평하고, 핵무기를 ‘평화수호의 강력한 보검’이라고 표현한 데에도 선대에 대한 존경의 뜻이 포함돼 있다. 핵·경제 병진 노선이 유효하다는 점도 읽을 수 있다. 핵무기 보유를 토대로 이제부터는 ‘만리마대진군’과 대북 제재 완화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인민들의 생활상 애로를 풀어주겠다’는 의지가 신년사 곳곳에 녹아 있다. 핵을 갖게 됐으니 두 번째 과제인 먹고사는 문제에 집중하겠다는 얘기다. 남북관계 진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에 적극 나서는 것 역시 경제난 해결과 맞닿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경제를 위해 과거·현재·미래 핵을 전부 포기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만한 대목은 신년사 어디에도 없다. 신년사만을 놓고 보면 김정은은 핵을 보유하고 있는 상태에서의 사회주의 경제 건설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하겠다. 북·미 정상이 내달 만나 비핵화라는 큰 틀에서 합의를 이룬다고 해도 북핵 폐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김정은의 ‘비핵화’는 무슨 의미일까. 김일성이 생전에 주장한 ‘조선반도 비핵지대화’와 맥이 닿아 있을 것 같다. 김일성 주장의 골자는 북한 체제를 위협하는 핵전력자산의 철수나 국제적 핵감축 협상을 통한 해결 등이다. 김일성은 1980년, 새로운 동력 자원을 개발·이용하기 위한 투쟁을 적극 벌이겠다며 소위 ‘핵평화주의’를 거론하기도 했다. 1991년 10월 평양에서 열린 제4차 남북고위급회담 때 북한이 우리 측에 제안한 ‘조선반도의 비핵지대화에 관한 선언(초안)’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선언에는 핵무기의 시험 소유 사용의 금지, 핵우산을 제공받겠다는 협약 체결 금지, 남한에 있는 미국 핵무기와 미군 철수 등이 담겼었다.

27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담판에서 과거 주장을 다시 꺼내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북한 비핵화’ 대신 ‘한반도 비핵화’로 슬며시 말을 바꿨다. ‘조선반도 비핵지대화’를 연상시킨다. 김정은이 미국과의 물밑 협상에서 자신의 의중을 어느 정도 관철시킨 결과로 보인다. 그 방향으로 계속 나아간다면 한반도뿐 아니라 동북아 안보환경에 일대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다. 한데 신년사를 보면, 김정은이 과연 모든 핵무기를 없앨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김진홍 편집인 j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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