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준 칼럼] 공감 결핍 증후군과 보수의 위기 기사의 사진
공감을 일으키는 능력은 선거와 여론에 의존하는
자유민주주의에서 리더십의 성공을 가르는 핵심 요소
한국당, 경청할 줄 알고 울림이 있는 말 구사하는
공감형 리더십 보여줘야 위기 극복할 수 있어


6·13 지방선거가 이제 한 달도 안 남았다. 승부가 기울었다는 세평이다. 대통령의 지지율은 여전히 높고, 선거 열기를 북한 이슈들이 온통 덮어버렸다. 북·미 정상회담이 하필 선거 전날 열리니 야권으로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야속할 만하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이기는 선거는 재미도 없지만 건강한 민주주의도 위협한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선거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는 경쟁이다. 표를 찍는 패턴은 크게 두 가지다. A가 싫어서 B를 찍거나 B가 정말 좋아서 B를 찍거나. 실제 선거에서는 전자가 후자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 그런데 만일 A가 싫어 B를 선택하고는 싶은데 그 B가 A만큼이나 미운 짓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투표를 안 하거나, 거꾸로 B가 정신 차리라고 A를 역선택할 것이다.

지금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을 바라보는 보수층의 심정이 딱 그렇다. 당대표 디스카운트는 이제 눈감을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시중의 말은 한결같다. 문재인정부에 대해 혹평하는 사람들도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에 대해서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대표의 메시지와 행태는 ‘희화’와 ‘조롱’의 대상이 되기 일쑤다. 여론조사상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은 10%대에 머물고 있다. 지지층은 점점 더 반공에 뿌리를 둔 ‘모태 보수’로 쪼그라들고 있다. 젊은 사람일수록 자유한국당에 마음의 벽을 친다. 그 근원적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무엇보다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공감 능력 결핍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한다.

공감의 철학을 정립한 이는 바로 시장경제론의 원조 애덤 스미스다. 그의 묘비명에는 ‘국부론을 쓴 애덤 스미스’가 아니라 ‘도덕감정론을 쓴 애덤 스미스’로 되어 있다. 도덕감정론은 국부론을 쓰기 이전에 철학자로서 그가 집필한 책이다. 그것은 ‘공감의 공동체론’이다. 그에게는 시장이 우선이 아니라 공감이 우선이다. 타인에 대한 연민과 감정이입, 역지사지에 바탕을 둔 이해심, 그에 바탕을 둔 정의감, 인애(仁愛), 책임감 등 공감의 사회적 미덕들에 바탕을 둘 때 시장도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가히 오늘의 보수에 귀감이 될 철학이라 하겠다.

최근 뇌과학의 발전은 공감이 인간 진화의 최고 선물임을 확인해줬다. 인간의 뇌는 수백만년 동안 진화해온 동물의 뇌 진화 단계를 체현하고 있다. 정신의학자 마크 골스턴에 의하면 인간 뇌의 가장 안쪽에는 뱀의 뇌와 같은 파충류의 층위가 자리한다. 편도체라는 부위가 주로 관장하는 이 영역은 주로 경계심과 공포, 스트레스로 작동된다. 뇌의 중간 영역에는 토끼와 같은 포유류의 층위가 있다. 주로 기쁨과 슬픔, 분노와 즐거움 등 감정을 지배하는 곳이다.

그리고 전두엽의 대뇌신피질에 위치하는 바깥 영역이 인간이 가장 크게 발전시킨 영역이다. 언어와 소통, 이성과 도덕, 분석과 체계화가 이 층위에 자리 잡는다. 우리 뇌 안에서 뱀의 뇌, 토끼의 뇌, 인간의 뇌는 늘 부딪히고 연결된다. 곧잘 사람은 뱀의 뇌에서 못 빠져나오고 때로 토끼처럼 감정에만 매달리기도 한다. 인간의 뇌 기능 중 최고의 진화된 기능이 바로 공감 능력이다. 타인의 감정과 동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거울 뉴런의 발견이 이를 확인해줬다.

공감을 일으키는 능력은 선거와 여론에 의존하는 자유민주주의에서 리더십의 성공을 가르는 핵심 요소다. 이 경우 자신의 청중이 누구인지에 따라 공감의 전략은 달라질 수 있다. 소수의 핵심 지지층만을 청중으로 삼을 때는 분노만 동원해도 된다. 그렇지만 더 포괄적인 청중에게 다가설 경우 버럭 화를 내는 것만으로는 역효과를 내기 십상이다.

‘나라를 통째로 넘기시겠습니까?’ 같은 자유한국당의 지방선거 구호가 그 사례다. 물론 공포감을 조성해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전략, 즉 ‘뱀의 뇌에 호소하는 전략’은 정치에서 곧잘 쓰이는 기법이긴 하다. 이른바 ‘갈라치기 전략’이다. 그러나 늘 먹히는 것은 아니다. 상대에 대한 대중적 분노가 크게 상승해 있거나 대안이 매력이 있을 때만 먹힌다. 섣부른 갈라치기는 자신의 지지층만을 갈라칠 뿐이다. 세상은 이미 바뀌었다. 자유를 호흡하며 자란 젊은 세대일수록 강요받길 싫어하고, 공포를 동원하는 데 거부감을 느끼고, 자신의 상식이 존중받길 원한다. ‘뱀의 뇌’보다는 ‘인간의 뇌’에 말을 걸길 원하고 있다.

보수냐 진보냐 이전에 경청할 줄 알고, 현실을 꿰뚫어보고, 울림이 있는 말을 구사하는 공감형 리더십을 갈구하고 있다. 이를 새로 만들어내지 않고는 ‘보수의 위기’는 극복될 수 없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박형준 동아대 교수 (전 국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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