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하주원] 불편한 구두 기사의 사진
인턴을 시작하면서 운동화를 신을 수 없으니 구두는 신어야 했는데 그래도 편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겉에서 보기에는 아주 편해 보이는 신발은 싫어서 굽이 낮은 정장 구두를 샀다. 하루 18시간의 근무를 같이 해주던 구두였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책이며 논문을 찾아보고 그렇게 나 혼자 치열한 줄 알았던, 사실 딱히 다른 사람들과 비교를 해서 그런 결론을 낸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청춘을 불태웠던 때 함께한 구두였다. 가격은 점점 올랐지만 그래도 좋은 구두는 좋은 곳으로 데려다준다는 말에 늘 같은 브랜드 구두만 사서 닳을 때까지 신었다.

종이가 나무에서 온 것이 분명한 것처럼 물건에는 만든 ‘사람’이 분명히 있었다. 뭔가를 사면서, 매일 신고 다니면서, 물건을 만든 사람의 입장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알아볼 생각도 없었다. 그게 지금 나의 부끄러움이다.

알려고 애를 써도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증여세를 잘 내고 사회적 공헌 활동을 많이 하는 기업의 식품만 사 먹는 것, 불법 정치자금을 낸 명단에 없는 기업의 화장품을 구매하는 것, 약자를 짓밟은 기업을 거부하는 것. 나름대로 좋은 소비를 하기 위해 애썼는데 그 어느 때보다도 무력감을 느낀다. 물론 ‘다 똑같아’라고 생각한다면 간단하다. ‘그 회사만 그렇겠어? 어차피 다른 기업도 다 똑같지’라고 생각해 버리면 편하다. ‘거부해봤자 결국 다른 고용된 사람들에게 피해가 갈 뿐이야’라고 생각하면 내가 의식을 갖고 할 수 있는 행동이 모두 무력해진다.

아무리 신문을 읽고 뉴스를 봐도 개인이 얻을 수 있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다. 일이 바쁘거나, 입원을 하거나, 외국에 나가 있다 보면 심지어 남들이 알고 있는 중요한 뉴스까지도 놓치기 쉬운 세상이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이런 아둔함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많이 보고, 자세히 읽고, 걸러서 들으며, 조금이라도 더 생각하기 위해 애를 쓸 수밖에 없다. 어차피 다른 구두도 다 똑같다 하더라도, 똑같다고 전부 괜찮은 것은 아니다. 잘 신던 구두인데 갑자기 불편해진 것 같다.

하주원(의사·작가)

삽화=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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