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세계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예루살렘으로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관을 옮겼다. 이스라엘 군경은 이에 항의하는 가자 지구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총격을 가해 50여명이 사망하고 2000명 넘게 부상했다. 사망자 중에는 어린이들도 포함돼 있었다. 14일 세계 주요 언론을 장식한 두 사진의 대조는 끔찍하다. 전쟁터 같은 시위 현장에서 유혈이 낭자한 팔레스타인인 부상자가 이송되고 있고, 80㎞가량 떨어진 예루살렘의 새 미국 대사관 개관식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와 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쿠슈너는 유대인 출신이다. 이스라엘의 인명 경시를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스라엘 군경은 시위대가 국경에 접근했다며 실탄 사격을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시위대가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지 않았음에도 이스라엘 군경이 과도하고 치명적인 폭력을 행사했다”고 맹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영상 축하 메시지에서 미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은 중동 평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중동의 평화는 고사하고 이스라엘의 평화에도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 미 국무부의 공식 중동 정책인 ‘두 국가 해법’은 휴지조각이 됐다. 두 국가 해법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서로를 독립국으로 인정하며 공존하게 하는 방안을 말한다. 미국은 이번 대사관 이전으로 중동 문제 중재자로서 최소한의 요건인 중립성도 스스로 포기했다. 시리아 사태에 이어 중동 정세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됐다. 이스라엘의 평화와 안보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영국 가디언의 분석 기사처럼 트럼프는 중동의 화약고에 다시 불씨를 던졌다.

무엇보다 이번 사건은 트럼프 취임 이후 추락하는 미국 외교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줘 충격적이다. 백악관 부대변인은 팔레스타인 시위대의 사망에 대한 책임을 묻는 질문에 “유혈 사태의 책임은 전적으로 가자 지구를 통제하는 무장 정파인 하마스에 있다”며 이스라엘의 발포를 두둔했다. 또 “오늘은 이스라엘에 좋은 날”이라는 말을 반복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형식적으로나마 인권과 평화 등 보편적 가치와 국제 규범을 강조하는 미국 외교도 없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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