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 또 ‘IMF 악몽’ 왜… 지나친 돈풀기에 페소화 폭락 기사의 사진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14일(현지시간) 한 시민이 미국 100달러 지폐 속 초상화를 딴 가면을 쓰고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난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은 페소화 가치 급락에 대처하기 위해 지난 8일 IMF에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AP뉴시스

이전이미지다음이미지

2000년 400억 달러 이어 300억 달러 구제금융 요청
양극화 해소 분배정책 등 여파 한 해 25% 넘는 인플레이션
80년대 외채위기 뿌리 남아 체질 개선 못해 여전히 취약


아르헨티나가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면서 십수년 전의 경제위기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다. IMF는 오는 18일 300억 달러(약 32조원)의 자금 지원을 요청한 아르헨티나 측과 비공식 회의를 할 예정이라고 14일 밝혔다.

이번 조치는 만약을 대비한 성격이 짙다. 16일 만기인 6740억 페소(약 29조원) 규모 국채를 차환하지 못할 경우 채권을 팔려는 외국인투자자가 몰리면서 달러화가 급격하게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쿠션’을 두껍게 만드는 작업이다. 실제 아르헨티나의 최근 달러화 보유액은 500억 달러 이상으로 과거 IMF 졸업 다음 해였던 2008년보다 오히려 낫다. 그럼에도 현 경제 상황이 비관적인 건 분명하다. ‘IMF 트라우마’에서 자유롭지 못한 아르헨티나가 다시 IMF에 손을 내민 것 자체가 그 증거다. 아르헨티나는 2000년 IMF로부터 400억 달러를 지원받은 뒤 뼈아픈 구조조정을 감내한 바 있다.

아르헨티나 경제는 2003년 좌파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대통령 집권 뒤 세계적 호황과 함께 안정을 되찾고 IMF로부터 빌린 돈을 2007년 모두 갚았다. 네스토르의 후임인 아내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그간 극심해진 경제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분배정책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이 시기 재정이 악화되고 한 해 25%가 넘는 인플레이션이 일어났다.

마크리 현 대통령은 2015년 말 집권하면서 이 같은 상황을 끝내겠다고 공언했다. 시장경제 중심 체제로 국가경제를 개혁하겠다는 약속이었다. 먼저 정부 지출을 줄이기 위해 각종 정부 보조금을 줄여나갔다. 해외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그간 페소화 가치를 방어해준 환율규제를 철폐한 것도 상징적 조치였다. 중앙은행은 단기 국채 발행을 크게 늘려 해외자금을 끌어 모았다.

그러나 체질 개선 없이 급하게 이뤄진 개혁은 후폭풍을 낳았다. 올해 들어 세계경제가 부진하면서 아르헨티나 국채를 이른바 ‘정크펀드(고소득·고위험 펀드)’처럼 끌어 모은 해외 투자자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렇잖아도 환율규제 철폐 뒤 폭등했던 페소·달러 환율은 지난달 달러당 20페소를 돌파한 데 이어 현재 25페소까지 치솟았다. 폐소화 가치 폭락은 다시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있다. IMF 지원 신청은 이 악순환을 끊으려는 시도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상황이 허약했던 경제구조를 기초부터 뒤엎지 못한 데 근본 원인이 있다고 본다. 김진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결국 군사정권의 과도한 외채 발행으로 초래된 80년대 채권 위기의 뿌리가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라면서 “아르헨티나는 산업과 생산의 구조를 획기적으로 바꾸지 못해 여전히 세계경제 변동에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일단 아르헨티나 경제의 향방은 IMF와의 협상에 달렸다. 보다 우호적인 조건의 차관을 지원받는 데 성공한다면 투자심리가 반등할 수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마크리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협조를 약속하는 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국제 공조 가능성이 있는 것은 긍정적인 대목이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