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경제인사이드] 한진家 전횡에 힘실린 ‘상법 개정’… “갑질 견제” vs “경영권 위협” 기사의 사진
드라이브 거는 당정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 제도 도입… 기업 총수 전횡 제대로 감시해야”

반대하는 재계
“논의되는 법안은 규제 지나쳐 해외투기자본이 악용할 가능성”

보완 주장하는 한국당
“차등의결권이나 포이즌 필 등 경영권 방어 수단 함께 도입해야”

영향 미칠 변수
한진 일가 갑질, 법 개정 여론 키워… 엘리엇 행태는 도입 반대 의견 낳아


문재인정부가 추진하는 상법 개정이 경제계 최대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는 상법에 대기업 지배구조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여러 제도를 도입하려 한다. 여당은 올해 안에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줄곧 반대 입장을 밝혀온 재계는 이를 막을 전략을 고심 중이다. 자유한국당도 여당 주도의 일방적 법안 처리에 반대하고 있다. ‘상법 개정’의 전장(戰場)은 국회가 되겠지만 장외 여론전도 뜨거울 전망이다.

2016년 11월 1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제1소위원회.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런 발언을 했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는 정말 서구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사건입니다. 대기업 재벌들이 협박을 당했든 공갈을 당했든 알아서 갖다 바쳤든 서구에서는 그런 것들이 다 감시되고 그런 일이 일어났으면 바로 대표이사는 법적 책임을 집니다. 견제장치가 하나도 없어 이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런 이유에서 여러 상법 조항이 도입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백 의원 발언은 정부·여당이 상법을 고치려는 이유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부·여당은 국내 대부분 대기업에 총수가 기업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지배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고 보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서 여러 대기업이 정체가 불분명한 미르와 K스포츠 재단에 수십억원을 낼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구조 탓이라는 것이다. 주식회사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인 이사회가 사실상 총수의 뜻으로 구성되는 게 핵심 문제다. 총수의 전횡을 제대로 감시할 사람이 없다는 얘기다. 총수 뜻에 반하는 의견을 낼 수 있는 사람이 이사회에 들어갈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꿔보겠다는 게 상법 개정의 취지다.

이러한 뜻에서 발의된 상법 개정안에는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 다중대표소송 도입 등이 들어 있다. 집중투표제는 주주총회에서 이사를 뽑을 때 ‘1주 1표’가 아니라 뽑을 이사의 숫자만큼 표를 행사하는 제도다. 예컨대 이사 4명을 선임할 경우 현재는 주주들이 각 이사에 대해 찬반 여부를 밝히는 1표씩 행사한다. 집중투표제가 의무화되면 이사 숫자만큼인 4표를 한 명에게 몰아줄 수 있다. 소수 주주가 뜻을 모으면 한 명 정도는 이사회에 진출시킬 수 있게 된다. 집중투표제는 현재 상법에 도입돼 있지만 각 기업이 정관으로 시행하지 않을 수 있어 이를 도입한 곳은 많지 않다. 10대 그룹 계열 상장사 가운데는 포스코와 SK텔레콤, 한화생명 3곳만 도입했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은 기업의 감사위원을 다른 이사들과 분리해 선출하고 이때 지배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제도다. 주식을 10% 이상 갖고 있어도 의결권은 3%까지만 행사할 수 있다. 다중대표소송은 지주사나 모기업의 주주가 자회사 이사의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소송 제도다. 총수 일가가 소유한 비상장 계열사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재계는 상법 개정에 반대해 왔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해 2월 국회에 제출한 ‘상법 개정안에 대한 경제계 의견’에서 “도둑을 잡기 위해 야간통행을 전면 금지하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기업이 상장사를 개인회사처럼 운영하고 편법승계를 하는 등 구시대적 관행이 있지만 사전규제만 강화하는 방식은 실효성이 낮고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재계는 신속한 의사 결정이 어려워지고 손실이 우려되는 모험투자는 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호소한다. 상의 관계자는 16일 “문제 있는 부분은 고쳐야 하지만 지금 논의되는 법안은 규제가 지나치게 강하다”며 “세계적으로 이런 법을 갖고 있는 나라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재계는 특히 해외투기자본에 의해 제도가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다. 해외투기자본이 이사회에 진출할 경우 기업의 장기 발전보다 단기 수익만을 위한 활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유정주 한국경제연구원 기업혁신팀장은 “해외투기자본은 경영권을 위협해 대주주 우호 세력으로 하여금 지분을 매입하게 해 주가를 띄우거나 배당을 많이 하라고 요구한 뒤 이익만 챙기고 떠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 법사위 제1소위는 2016년 11월과 지난해 11월 이 문제를 논의했으나 올해는 집중적인 심의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여당은 지방선거와 여름휴가 시즌 뒤인 8월 국회부터 이를 본격적으로 다룰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제1소위원장인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야당에서도 지난해 일몰된 섀도보팅을 보완하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발의한 상황이라 법 개정 자체에는 공감대가 있다”고 말했다. 여야는 다중대표소송 도입에는 어느 정도 뜻을 모았으나 세부 내용에서 이견이 남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자유한국당은 집중투표제나 감사위원 분리 선출 등을 의무화하려면 ‘차등의결권’이나 ‘포이즌 필’ 등 경영권 방어 수단을 함께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차등의결권은 일부 주식에 특별히 많은 수의 의결권을 부여해 경영권을 보유한 대주주의 지배권을 강화하는 제도다. 포이즌 필은 시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지분을 매입할 수 있는 권리를 기존 주주에게 부여해 경영권을 지킬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여야가 하반기 국회에서 치열한 힘겨루기를 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국회 밖 여러 변수도 법 개정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무엇보다 행정부가 집중투표제 의무화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법무부는 최근 집중투표제 도입 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의견을 국회 법사위에 전달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지난달 집중투표제 배제에 반대하고 배제를 삭제하는 안에 찬성하도록 의결권 행사 지침을 바꿨다. 집중투표제로 이사를 선임할 때는 ‘주주가치를 증대하는 방향’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 갑질 사태도 대기업 지배구조 개편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조 회장 일가가 사적인 심부름에 대한항공 지점 등 회사 조직을 이용했다는 의혹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도 대한항공 이사회는 조 회장 일가 거취에 관해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는 상법 개정의 필요성을 설명할 ‘적격 사례’로 제시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의 최근 활동은 상법 개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엘리엇은 현대자동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에 반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부를 상대로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 결정으로 피해를 입었다며 7000억원대의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엘리엇이 기업 가치보다 시세차익과 배당 등 이익만을 노리고 행동하고 있다는 점이 명확해질수록 재계의 상법 개정 반대 이유가 설득력을 얻을 가능성이 높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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