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이준한] 한·미 정상회담 앞둔 文 대통령의 과제 기사의 사진
1950년 겨울 개마고원 장진호에서 미국 제1해병사단이 중국군 7개 사단에 포위됐다. 혹한 속에 고립된 미군은 전멸의 위기에서 보름 동안 중국군의 발을 잡았다. 그 사이 흥남부두에서 수만명의 피란민들이 배를 타고 남하했다. 그 피란민들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도 있었다. 피란민의 아들인 문 대통령은 2017년 6월 30일 첫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장진호전투 기념비부터 찾았다. 자신에게 향한 미국의 불안감을 씻어내고 한·미동맹을 발전시키려는 신호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그해 11월 7일 두 번째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한국에 왔을 때 캠프 험프리스부터 방문했다. 평택에 새로 지어진 세계 최대 해외 미군기지다. 전통 취타대와 의장대의 호위를 받으며 청와대에 들어선 트럼프 대통령은 “굉장히 중요한 국가인 한국을 우회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이른바 ‘코리아 패싱’에 대한 우려를 덜어냈다. 다음 날 판문점을 방문하려던 트럼프 대통령의 계획은 짙은 안개로 무산되었다. 판문점 방문은 오는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갖기로 하면서 또 미루어졌다.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오는 22일 세 번째 한·미 정상회담이 열린다. 사실 지난달 27일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후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장시간 통화했고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부지런히 워싱턴을 오갔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두 번이나 평양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협상을 벌였다. 김 위원장은 두 번 중국으로 건너가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났다. 북·미 정상회담이 잘 풀리면 곧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 정상이 만나서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해 설계할 것이 분명하다.

최근까지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폐기하기 전까지 최대의 압박을 유지해 대북 제재를 해제하지 않을 것이고 어떠한 보상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여차하면 자리에서 일어나 나올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인터넷매체 악시오스는 “트럼프 대통령은 ‘나를 제외한 미국의 역대 모든 대통령은 예측 가능했다. 그런데 그들 정권 때는 외교가 너무 각본대로 이루어지면서 적들에게 패만 노출했다’는 말을 하고 있다”고 전하면서 “그 누구도 내가 무엇을 하려 하는지 알지 못한 상황을 즐기는 중”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0일 북한에 억류되었던 미국인들을 맞이하면서 처음으로 “한반도 전체 비핵화”를 언급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완전히 해체하면 “미국의 민간 부문이 북한에 들어가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대규모 에너지망 건설을 돕고, 식량난 해소를 위한 농업 투자와 인프라 투자가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즉 미국이 북한을 우리와 같은 수준의 번영을 누리도록 협력할 수 있다는 말이다. 지난 1년 동안 ‘코리아 패싱’론을 ‘문재인 운전자’론으로 바꿔나갔던 한반도 비핵화 협상의 결실이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발언이 현실화된다면 1950년 한국전쟁 이후 공고해진 분단체제를 완전히 해체시키는 수준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세 번째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을 방문하는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서 할 것은 단 하나다. 트럼프 대통령이 “나의 가장 자랑스러운 업적은 한반도 전체를 비핵화하는 것”이라고 한 말이 그대로 열매를 맺도록 불확실성을 없애는 것이다. 지금까지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를 막았고 남북 정상회담은 물론 북·미 정상회담을 이끌었던 것에 멈추면 안 된다.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철저히 이행하고 사찰과 검증을 어김없이 받도록 해야 한다. 미국이 통 큰 보상을 약속했다면 빠짐없이 지키도록 만들어야 한다. 문 대통령에게는 한반도 비핵화행 열차가 탈선하지 않도록 운전할 과제가 남아 있다. 남북의 평화적인 통일과 조화로운 경제발전을 향한, 어쩌면 마지막 기회 앞에 서 있기 때문이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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