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손영옥] 50대의 강을 건너며 기사의 사진
얼마 전 인기리에 끝난 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는 ‘돌싱’ 중년 남녀를 내세운 어른 멜로이다. 극중 스튜어디스 출신의 45세 안순진(김선아 분)이 50세 광고업계 이사인 손무한(감우성 분)에게 늙었다고 놀리는 대목이 나온다. 내 나이 45세 때다. 오십이 넘은 분에게 김선아처럼 그 심경을 물은 적 있다. 그 나이가 먼 미래, 그래서 상상도 할 수 없는 기분인 것처럼.

나도 어느 새 오십이 넘었다. 이 기분, 누군가가 묻는다면 이렇게 말할 것 같다. “한마디로 XX같다”라고. 우선 체력의 저하 정도가 상상초월이다. 갱년기 증상을 얼굴의 화끈거림 정도로만 예상했던 건 오산이었다. 50년 이상 막 사용한 신체가 복수라도 하듯 말을 듣지 않는다. 새벽까지 무슨 일을 좀 하고 나면 일주일 간 수습이 안 된다. 덜컥 위기감이 들 때도 있다. 중년 여성들이 ‘마늘 주사’ ‘태반 주사’ 찾는 심정이 이해가 갔다.

더 힘든 건 벼락같은 이별이다. 죽음의 심연이 검은 아가리를 벌리고 50대의 주변을 맴돌다 기습하는 것 같다. 가족을, 동료를 그렇게 떠나보내면서 삶이 아득해진다. 얼마 전에도 50대의 회사 선배를 그렇게 떠나보냈다.

살아가는 게 우울할 때 102세 현역 화가인 김병기 선생님을 떠올리면 위로를 얻게 된다. ‘늙어가는 법’이 보이는 듯해서다. 김병기 선생은 평양 갑부 집안 출신으로 아버지 김찬영은 우리나라 3호 서양화가다. 그도 일본 유학을 가 아방가르드 미술 세례를 받았다. 한국미협이사장까지 맡아 미술계의 정점에 있던 1965년,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 커미셔너로 참석했던 그는 귀국하지 않고 미국에 눌러앉는다. 미술판 정치를 멀리하고 그림에만 전념하겠다는 각오였다. 49세의 결단이었지만 한국 화단에서는 20년 가까이 잊힌 존재가 됐다.

미국을 여행 중이던 미술평론가 윤범모씨가 ‘증발한 화가 김병기’를 발견한 것이 계기가 돼 1985년 69세에 가나갤러리에서 귀국전을 열었다. 2014년 말 국립현대미술관 대규모 회고전을 계기로 2015년 영구 귀국했다. 1년 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2016년 100세 현역화가로서 개인전 ‘백세청풍(百世淸風)’전을 연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열정과 에너지, 건강도 대단하지만, 삶을 대하는, 후배 세대를 대하는 태도에서 느끼는 바가 많다.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는 선생은 자신을 소년의 연줄에 매달린 연이라고 묘사하셨다. 소년을 신에 비유했다. 후학을 만나면 늘 이렇게 말씀한다. “당신은 이 나라를 짊어질 아주 중요한 분이에요.” 상대방을 귀하게 여기니 뵙고자 하는 이들이 많아 작업에 방해를 받을 정도였다.

지켜본 이들은 장수 비결로 소식(小食)과 충분한 잠을 꼽는다. 언젠가 직접 물어봤더니 긍정의 정신을 말씀하셨다. 날이 흐리고 몸이 아프면 “이러다 죽으려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이내 그런 생각을 날려버린다며 웃는다. ‘긍정의 정신’ 사례를 목격한 적도 있다. 연초 국민일보 창간 30주년 ‘알베르토 자코메티 한국 특별전’ 개막식에 초청인사로 오셨다. 장·차관, 금배지에 밀려 축사할 순서가 닿지 않았다. 처음엔 섭섭해 하는 눈치였는데, 이내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러고 보니 작가는 나 혼자네. 내가 작가 대표로 온 셈이야. 허허”라고.

오는 19일 ‘102살 현역화가 김병기의 문화예술비사-백년을 그리다’ 출판기념회가 열린다. 윤범모 동국대 석좌교수가 그를 인터뷰해 지난해 1년 동안 신문에 연재한 것을 책으로 묶어 낸 것이다. 그런데 최근 입원해 출판기념회 참석이 불투명하다고 한다. 그렇게 정정하셨는데…. 앞서도 봄을 보내는 과정에서 두 번 병원 신세를 지셨다. 지난 4월로 예정됐던 2년 만의 개인전도 하반기로 미뤄졌다. 부디 쾌차하셔서 출판기념회에서 꼭 뵙고 싶다. 가을 전시까지도.

손영옥 문화부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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