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배병우] 文 대통령은 실용적인가 기사의 사진
마이클 그린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부소장은 한국에도 제법 알려진 동북아 전문가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을 지냈다. 그는 19대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지난해 5월 한 언론 기고문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이렇게 평가했다. ‘백악관에서 일할 때 문 후보를 관찰할 기회가 있었다.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그는 이념적이라기보다는 실용적인 인물이다.’ 그러면서 당선되면 문 후보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갈등 가능성을 우려하는 워싱턴 전문가들과 달리 자신은 낙관적이라고 했다. 청와대 참모들도 비슷한 얘기를 한다. 문 대통령이 팩트(사실)와 정보를 중시하며 이에 바탕을 두고 의사결정을 한다는 것이다. 법률가 출신이어선지 세부 사항도 꼼꼼히 챙긴다고 한다.

북핵 위기 국면을 남북해빙 분위기로 전환한 과정을 보면 이런 평가가 어느 정도 옳게 여겨진다. 문 대통령이 북한의 실상에 대한 광범위한 정보와 과거 남북협상 참가자들의 구체적인 경험을 토대로 시의적절한 판단을 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외교안보 참모들에게 북한과의 접촉 등 모든 정보를 미국과 공유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미국과의 굳건한 공조를 한반도 문제 해결의 핵심 조건으로 본 현실주의적 태도가 일을 성사시키는 데 큰 몫을 했을 것이다.

추상적인 이론이나 이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에 맞춘 접근법이 가장 필요한 분야가 경제정책이다. 경제 분야에서 문 대통령은 실용적인가. 문재인정부 경제정책의 근간은 소득주도 성장이다. 임금을 올려 늘어난 가계 소득으로 소비를 증대시켜 성장을 이끌어낸다는 게 작동원리다. 세계적으로 소득주도 성장의 원전(原典)인 임금주도 성장론이 대두한 것은 기업의 이익이 늘면 가계 소득도 늘어나는 ‘트리클 다운(낙수)’ 효과가 의문시되면서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을 구성하는 요소 중 소비지출의 비중이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 크게 낮다. 그래서 상당수 주류 경제학자들도 소비를 증진시키는 정책 방향이 옳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소득주도 성장이 장기적인 성장을 이끌어낼 것인지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소득 증가→소비 확대가 반드시 보장된 성장 경로라고 볼 수 없으며, 임금 상승은 기업의 입장에서 인건비 증가인 만큼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한국처럼 수출 의존도가 높은 소규모 개방경제에서는 임금 인상에 따른 소비 증대보다 수출 경쟁력 약화라는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소득주도 성장은 그 효과에 대한 구체적인 실증 분석 결과가 부족한 게 치명적인 약점이다. 이는 소득주도 성장을 가설 정도로 여기며 조심스럽게 추진해야 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정부의 행보는 과감함을 넘어 무모하게 느껴질 정도다.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노동시간 감축 등을 시행하면서 업주나 기업들의 보완책 호소에도 꿈쩍하지 않는다. 학자들은 초유의 실험이라지만 정부엔 자명한 진리의 길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대공황을 맞아 시행한 뉴딜은 진보주의 색채가 농후한 이념적 정책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저명한 경제학자인 브래드퍼드 드롱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교수 등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뉴딜은 과격하리만치 실용적이었고 탈이념적이었다.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현실의 경제학’에서 그는 루스벨트 행정부가 새로운 정책을 하나씩 순차적으로 시도해 보면서 효과가 없으면 폐기하고, 효과가 있으면 보강하고 확장해 나갔다면서 뉴딜을 실용적 실험주의(pragmatic experimentalism)라고 부를 만하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경제정책 실행에서 루스벨트 대통령의 사례를 참고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정부 정책의 힘이 세지만 결국 그 정책에 생기를 불어넣고 경제를 성장시키는 것은 기업의 활동과 에너지라는 상식을 상기했으면 좋겠다.

배병우 논설위원 bwb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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