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송용원] “번쩍하는 순간” 기사의 사진
살다보면 그런 때가 있다. 여태까진 모호했던 것이 온전히 드러나는 때 말이다. 마치 현미경이나 망원경으로 들여다보니 이전에는 감추어졌던 무언가가 갑자기 밝혀지는 시점. 미처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찾아오는 순간. 그런 모멘트는 개인의 일생을 결정짓고, 학문과 예술의 차원이 달라지거나 역사의 향방조차 뒤바뀐다. 그 순간을 가리켜 성경은 ‘계시’라고 말한다. 그런데 모든 걸 바꿀 만큼 중요한 경험은 대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일어난다.

1978년 4월 어느 쾌청한 날 오후, 문학을 전공하고도 재즈카페를 운영하며 근근이 살아가던 한 청년이 야구 경기를 보러 갔다. 1회 말 야쿠르트 선두타자가 2루타를 딱 하고 때리는 순간, 그 상쾌한 소리와 함께 그 청년에게 예기치 않은 문장 하나가 찾아왔다. “그래,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지 몰라.” 훗날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날을 이렇게 회고한다. ‘그런 생각이 찾아온 순간, 하늘에서 뭔가가 하늘하늘 천천히 내려왔다. 마치 하얀 야구공처럼. 나는 두 손으로 그것을 받아냈다. 때마침 그것은 일어났다. 일종의 계시 같은 것이었다. 본질의 돌연한 현현이었다. 내 삶에 어느 날 갑자기 뭔가가 눈앞에 쓱 나타나고 그것에 의해 모든 일의 양상이 확 바뀌었다.’

20세기 교회를 움직인 책으로 평가받는 ‘그리스도와 문화’의 저자 리처드 니버는 계시를 절묘하게 정의했다. 그것은 마치 ‘번쩍하는 문장’과 같다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책을 읽어가다 마침내 만나는 문장 하나가 있다. Luminous Sentence! 그 문장에서 통찰력을 얻은 독자는 책장을 다시 앞뒤로 넘긴다. 그때부터는 이해되지 않았던 수많은 문장이 거짓말처럼 풀려나간다. 인생도 학문도 역사도 씨름해야 하는 책과 같을진대 왜 그런 순간이 없겠는가. 철학자 화이트헤드는 이를 가리켜 삶에 다가오는 ‘특별한 계기’라고 했다. 다른 모든 계기들을 해석할 수 있는 계기라는 의미다. 아니 어쩌면 다른 모든 일은 그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차곡차곡 집적된 것인지도 모른다.

1971년 샌프란시스코 공항 대기실에 앉아 갈아탈 비행기를 기다리던 늦깎이 한국 유학생에게 소박한 차림을 한 서양의 한 신사가 다가왔다. 지리산 벽촌에서 태어나 홀어머니 아래 갖은 고생을 해가며 고학한 끝에 영국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캐나다에 연구원으로 가던 길. 그에게 다가오는 신사의 한 마디. 뭐 하는 사람이냐고. 해양법과 중국 석유 문제를 연구한다는 대답에 흥미로운 표정을 짓던 신사의 또 다른 한 마디. 몇 개 언어를 하냐고. 중국어 베트남어 포함해 7개 국어가 가능하다는 대답에 신사는 자신이 일하는 하버드 법대로 오지 않겠느냐고 제안한다. 그는 당시 국제법 최고 권위자였던 제롬 코헨 교수. 낯선 이국의 한 공항에서 우연처럼 찾아온 그 번쩍하는 순간은 청년 박춘호의 일생을 바꾼다. 그는 아시아 해양법 개척자의 길로 들어섰다.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기약 없는 포로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페르시아 왕 고레스는 즉위하자마자 벼락같이 포고령을 내린다. 그들의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을 지어도 좋다는 공포문에는 필요한 모든 자원을 아낌없이 지원하겠다는 세칙까지 친절하게 붙어 있었다. 그때를 추억하며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라는 노래를 지었다.

나라를 빼앗기고 동족끼리 전쟁도 하고 국토의 허리가 잘린 채 분단의 오랜 질곡에 시달려온 한반도에 정녕 ‘번쩍하는 순간’이 찾아온 것인가? 온 세계는 숨죽이고 지켜보기 시작했다. 역사는 모질었다.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듯 이 땅은 위태로웠다. 그러나 아무도 모르게 스토리는 축적되었다. 개인이든 공동체든 눈물과 땀으로 준비되었다면 번쩍하는 그 순간을 결코 놓치지 않으리. 비둘기처럼 날아오는 하얀 야구공을 받아낼 글러브를 얼른 꺼내야지.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송용원 은혜와선물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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