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맹경환] 악에 받친 대한민국 기사의 사진
최근 한 유튜버가 16년 전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을 찾는다는 영상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대개 그렇듯 ‘고마움을 전하려 선생님을 찾는 거겠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촌지를 요구하고 자신의 뺨을 때렸던 ‘원수 선생님’을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사실이라면 선생님은 어린 제자에게 엄청난 몹쓸 짓을 했다. 어머니를 불러 촌지를 요구했고, 어머니가 거절한 뒤에는 다른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때리고 심각한 언어폭행도 가했다. 그는 “수학 문제 틀렸다고 신던 실내화로 뺨을 때리고 ‘기초수급자로 살면 공부라도 열심히 해야 할 거 아니냐’고 했었다”고 전했다. 평생 잊히지 않는 일이었을 것이다. 이 유튜버는 이후 다른 영상을 통해 그 선생님으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한 사실을 알렸다. 그는 “선생님이 고소하면 제가 ‘큰일 났다. 고소하셨네’ 하면서 제 영상이 내려가고 저는 처벌받고 끝날 줄 알았겠지만 그게 아니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많은 사람이 선생님을 비난하니 충격적이겠지만, 그때 아무것도 몰랐던 초등학생의 갈기갈기 찢어진 상처는 그 심정의 몇 배는 될 것”이라고도 했다.

어린 시절 상처를 평생 안고 가야 했던 유튜버의 심정은 십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영상을 통한 고발로 인해 이 유튜버는 선생님과 그 가족에게는 또다시 평생의 ‘원수’가 될 수도 있다. 불행하게도 서로를 미워하고 저주하는 악순환이 시작된 셈이다.

언제부턴가 한국 사회는 용서와 화해가 아니라 서로를 죽기 살기로 물어뜯는 ‘악에 받친 대한민국’이 돼 가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정치권이다. 정권 교체 후 보복은 어느덧 일상이 됐다. 도를 지나친 비난과 막말, 합리적 비판마저 수용하지 못하는 정치문화가 고착화된 느낌이다. 정치인은 물론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가 돼 버렸다.

최근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드루킹 특검법’을 요구하며 단식에 들어가자 온갖 조롱이 난무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단식농성장 인근에 CCTV를 설치해 24시간 감시해야 한다는 청원이 올라왔다. 출처를 알 수 없는 피자가 배달되기도 했고, 심지어 김 원내대표가 폭행을 당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병원에 실려가는 김 원내대표를 향해서도 조롱은 멈추지 않았다. 생명을 담보로 한 단식에도 극단적인 한국당 반대자들에게는 비아냥거리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없는 듯이 보였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경기도지사 후보를 둘러싸고도 보통사람들의 상식에서 한참 벗어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민주당 일부 지지자들은 트위터 계정 ‘혜경궁 김씨’의 정체를 밝히라며 한 종합일간지에 광고를 낸 데 이어 관련 제보에 현상금을 걸겠다는 움직임도 있다. 일부는 지난달 말부터 이 후보의 후보직 사퇴를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열기도 했다. 지난 대선 당시 민주당 경선에서 이 후보 측과 지지자들이 문재인 대통령을 비방했던 일이 두고두고 앙금으로 남은 모양이다. 앞으로 문 대통령 지지자들이 한국당 남경필 경기도지사 후보의 당선 운동을 벌이는 거 아니냐는 우스개소리마저 들리고 있다.

악에 받쳐 돌아가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오아시스 같은 일들은 있었다. 지난해 9월 또래 여중생 4명에게 집단 폭행을 당해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한 여학생이 있었다. 지난 2월 재판에서 여학생은 가해자 친구를 용서했다. 가해 학생이 마음고생 했을 거라 생각하니 오히려 미안했다고도 한다. 용서를 택한 여학생은 저주와 원한의 굴레에서 자유로워지지 않았을까.

‘투스카니 의인’로 불리는 한영탁씨의 얘기도 벅찬 감동을 안긴다. 시속 100㎞ 이상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의식을 잃은 운전자의 차가 있다면 보통사람들은 피해 지나치거나 신고 정도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씨는 일부러 접촉 사고를 내면서까지 운전자를 구했다. 그는 “누구나 했을 행동”이라며 칭찬도 마다했다. 이들이 있기에 그나마 대한민국은 살 만한 세상이지 않은가.

맹경환 온라인뉴스부 차장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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