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준동] 13번째 특검 기사의 사진
특별검사(Special Prosecutor) 명칭은 1875년 미국에서 처음 등장했다. 남북전쟁 당시 북부 총사령관 출신인 제18대 미국 대통령 율리시스 그랜트에 의해서다. 측근들이 위스키 제조업자들과 결탁해 막대한 이익을 챙긴 사건이 폭로되자 위기 타개책으로 특검제를 도입한 것이다. 이때부터 미국에선 대통령이나 권력자들의 의혹을 수사할 필요가 있을 경우 특검을 임명하는 관행이 시작됐다. 하지만 그랜트 대통령은 특검을 세계 최초로 도입했음에도 특검을 방해한 첫 대통령이란 오명도 가지고 있다. 자신이 임명한 상원의원 존 핸더슨 특검이 대통령 측근들의 비리를 파헤치자 그를 해임시키며 특검을 무력화했다.

이후 특검이 법적인 체계를 갖추고 기반을 잡은 데는 워터게이트 사건(1972년)과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토요일 밤의 대학살’(73년)이 결정적이었다. 이를 계기로 미 의회는 78년 특별검사 제도의 운용에 관한 규정이 포함된 ‘공직자윤리법’을 제정했다. 명칭도 특별검사에서 ‘독립 변호사(Independent Counsel)’로 바뀌었다. 한시법이었던 특검법은 99년 자연 폐기됐지만 미 연방 법무부의 내부 조직에 따라 ‘특별 변호사(Special Counsel)’로 변경돼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특검제가 한국에 처음 도입된 건 미국에서 특검법이 폐기된 99년이다. 그해 터진 한국조폐공사 노동조합 파업 유도 사건과 옷 로비 의혹 사건이 일어나자 이 사건들의 진상 규명을 위한 특검제가 처음으로 실시된 것이다. 이후 법안은 9차례 만들어졌고 특검팀은 10차례 꾸려졌다. 첫 특검법 때는 파업유도·옷 로비 특검팀이 각각 구성됐다.

국회가 21일 본회의에서 ‘드루킹의 인터넷상 불법 댓글 조작 사건과 관련된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을 처리하면서 역대 13번째 특검이 탄생하게 됐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첫 특검이다. 그동안 여러 차례 특검이 떴지만 2014년 상시 특검법 통과 후 처음 구성된 ‘박영수 특검팀’(2016년) 이외에는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드루킹 특검’ 후보 추천 권한을 가진 대한변호사협회의 김현 회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역사 앞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훌륭한 특검 후보를 추천해 국민과 국회의 기대에 부응하겠다”고 밝혔다. 능력 있는 특검을 추천하고 선발해 특검제의 취지에 부합하는 결실을 이끌어내길 바란다.

김준동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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