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손수호] 어둠 속의 대화 기사의 사진
커튼을 펼치고 안으로 들어가니 이내 눈앞이 캄캄해졌다. 빛이 사라지면서 몸의 중심이 흔들렸다. 팔을 뻗쳐도 잡히는 게 없었다. 이렇게 100분을 지낸다고? 와락 겁이 났다. 눈이 닫히면 오감이 열린다는데, 그게 아니었다. 한참 뒤 안내자가 왼쪽을 짚어보라고 했다. 반원형의 곡선 모양과 마디가 잡혔다. 대나무 벽이었다. 칠흑의 어둠 속에서 촉각이 작동했다. 고마운 일이었다.

이후 시간은 평온했다. 함께 입장한 일행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감각을 조금씩 되찾았다. 다리를 건너고, 배를 타고, 시장을 천천히 돌아다녔다. 마카로니와 당면, 펭귄 인형 등 손에 쥐어준 물건은 맞히지 못했지만 언어의 활용법을 제대로 익혔다. 서울 북촌에서 진행되고 있는 ‘어둠 속의 대화(dialogue in the dark)’에서의 일이다. 보통의 장애체험 프로그램과 차별되는 대목이다.

근래 들어 가장 드라마틱한 대화는 지금도 눈에 선한 문재인-김정은의 4·27 만남이다. 이날 역사에 기록될 두 컷의 사진이 탄생했다. 손잡고 군사분계선을 넘고, 파란색 다리에서 산책하는 장면이다. 앞의 것은 완고한 국경의 벽을 나비처럼 쉽게 오갔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고, 뒤의 것은 봄기운 가득한 자연 속에서 나누는 표정이 깊게 각인되었다.

소리 없는 TV 중계를 보면서 나는 모국어의 힘을 깊이 느꼈다. 걸어온 길이 다르고, 나이 차이가 나고, 적국의 수장 혹은 대화의 파트너라는 다중적 신분이지만 하나의 언어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소중한지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일제 강점기 이후 한국어가 가장 빛을 발한 순간이기도 했다. 우리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애쓴 조상들이 새삼 고마웠다.

군사분계선이나 도보다리에 2명의 통역인이 따르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대화가 단속적으로 끊어지고, 사진을 위한 연출의 시간으로 채워진다면 의미가 어떠하겠나. 김정은과 시진핑이 다롄의 바닷가를 걷는 장면에서 보았듯 만남의 차원이 다르다. 언어는 이처럼 민족의 특성을 형성하는 결정적 요인이다. 김정은 남매의 방명록에 기웃한 것도 필체를 통해 내면의 무늬까지 읽을 수 있는 언어적 동질감에 바탕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 순서는 트럼프-김정은이 만들어낼 세기의 장면이다. 대화라는 것이 약한 수준에서 시작해 강한 이슈로 접근하거나, 다자 간 국제회의에서 안면을 튼 뒤 단독회담으로 이어지는 것이 상례인데, 얼마 전까지 전쟁불사론을 펴던 당사자가 바로 씨름판에 뛰어들었다. 한판승을 거둘 자신들이 있다는 이야기다. 자동차와 무기를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체제와 미래를 거래하는 장마당! 역사의 물굽이가 거칠게 휘몰아칠 것을 생각하면 벌써 아찔하다.

장밋빛 전망은 금물이다. 과도한 상상력도 자제해야 한다. 역사에서 보듯 4강 외교는 늘 어렵다. 가시덤불이 둘러쳐진 환경 속에서 이뤄지는 북·미의 만남은 ‘어둠 속의 대화’가 될 것이다. 서로 일면식이 없고, 문화가 판이하고, 신뢰보다 불신의 경험이 많고, 중국이라는 불확실성이 암초처럼 도사리고 있다. 남쪽에서는 언어의 갑작스러운 비약에 불안해하고 있다. “인민군대에서는 서울을 단숨에 타고 앉으며, 남반부를 평정할 생각을 해야 한다”던 발언의 행방을 쫓고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은 해뜨기 전의 미명일 수 있다. 어둠 속에서 새 길을 찾는 거다. 테이블에 앉을 주인공들은 승부사 기질이 강한 데다 실용적 협상 기술을 구사한다는 점에서 의외의 성과를 가져올 수 있다. 지긋지긋한 대립의 시대를 끝낼 때가 됐다는 시대적 명분도 강하다. 조영식 박사의 책 제목처럼 ‘평화는 개선보다 귀하다’는 공통의 지향점이 있다. 6월 12일, 두 사람의 대화가 현대사에 길이 남게 되기를, 싱가포르에서 부화한 평화의 비둘기가 한반도를 향해 힘차게 비상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손수호 (객원논설위원·인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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