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호 칼럼] 이 또한 지나간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기사의 사진
진실 여부 떠나 드루킹 사건 다루는 정권의 태도에서 위기 전 단계 징후를 느낀다
이너 서클이 정권에 부정적 정보에 대해 반감을 갖는 게 일반화돼 있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한다면 위기대응 능력이 없다고 봐야 한다


이른바 ‘드루킹’ 사건에 송인배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이 연루된 사실을 보고받고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있는 그대로 설명하라”고 지시했다.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경남지사 후보 측은 부인하지만, 드루킹으로부터 댓글조작 컴퓨터 프로그램 ‘킹크랩’에 대한 설명을 듣고 100만원을 줬다는 주장도 제기된 터다. 대선 전 일이다. 그러면 대선 때는 아무 일이 없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일단 상식이다. 초기의 단순 의혹에서 정말로 정권 핵심인사 일부가 관여한 정치적·조직적 불법행위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합리적 의심의 단계로 접어든 거다. 대통령의 언급은 사건 보도 한 달여 만이다.

그동안의 흐름을 짚어 보면 정권 일각의 건강하지 못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김 후보나 송 비서관이 대통령 측근 중 측근이란 건 다 안다. 그런데 드루킹 사건이 터졌다. 초기에 김 후보는 관련설을 강력히 부인했다. 그러나 그 부인을 부정하는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점차 방어선을 뒤로 물려야 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송 비서관이 드루킹으로부터 돈 받은 사실을 조사하고 관례를 벗어나는 정도가 아니라는 이유로 덮었다. 이 정권 민정수석실은 출범부터 코드 인사(人事) 검증이나 핵심 인사(人士)와 관련된 의혹 조사에서는 ‘별 것 없음’ ‘아무런 하자 없음’을 인증하는 부서로 전락했다. 수준 이하다. 경찰의 드루킹 수사는 단순히 부실 정도가 아니라 축소 은폐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뒤따를 만큼 특이하다. 능력이 없어서인지 수사책임자인 서울경찰청장이 정권 핵심과 친분이 있어서인지는 모르겠다. 초반에는 드루킹이 이끄는 ‘경공모’를 사이비 준종교집단쯤으로 규정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이렇게 자꾸 밀리다 보니 김 후보 측이 좀 억울하다고 주장하더라도 여론이 별로 신뢰하지 않게 됐다.

이렇게 드러난 정황만 봐도 정권 일각이 이 사건을 다루는 분위기나 흐름을 알 수 있다. 그가 경남지사가 되면 차기 대권반열에 오를 것이라고 내부에선 인정한다. 나이(51)도 젊고 여야 정치인들로부터 두루 평판도 좋다. 노무현-문재인을 이어가는 상징성도 아주 크다. 당연히 정권 내부에서는 흠집내선 안 될 존재일 법하다. 그러니 김 후보를 건드리면 안 된다는 거다. 그리고 영남 특히 PK에선 꼭 이겨야 한다. 이해는 하나 이런 분위기는 심각한 결함을 안고 있다. 내부에서 상하 간, 의견이 다른 이들 간, 커뮤니케이션이 안 된다. 가장 큰 이유는 부정적 정보에 대해 반감이 생기는 분위기 때문이다. 폐쇄적 조직이나 끼리끼리 조직의 특징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권은 전 정권의 불통, 문고리 권력만의 소통에 대한 기저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그래서 가장 강조하는 게 소통이다. 그렇게 중요한 소통이 오로지 좋은 뉴스에서만, 잘 나가는 국면에서만, 자화자찬하는 상황에서만 이뤄진다면 어떻게 될까. 굳이 기술할 필요는 없겠다.

집단 내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못하는 것을 전문가들은 ‘애벌린 패러독스’로 설명한다. 미국 텍사스의 더운 여름날 오후. 한가롭게 쉬고 있는 사위. 장인이 80㎞ 떨어진 애벌린으로 저녁을 하러 가잔다. 아내가 좋다고 하자 차안에서의 찜통더위가 걱정됐지만, 장모마저 가자고 거들자 자기만 반대하지 못해 떠나기로 한다. 그러나 식사는 별로였고 오가는 4시간은 생고생길이었다. 지친 몸으로 돌아왔을 때 모두의 입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사실 나는 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당신이 좋으라고 간 거다, 나는 그냥 심심해서 가자고 해본 것뿐인데, 이 더운 날 가자고 한 게 미친 짓….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애벌린행이었다. 집단의 경향에 반대하는 걸 두려워하는 집단사고의 전형이다. 시간도 버리고 최악의 상황만 초래했다.

드루킹 사건을 다루는 청와대나 정권 핵심들은 ‘우리가 애벌린으로 가고 있는 건 아닌가’고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원하지 않거나, 옳지 않은 쪽으로 가고 있는데도 동의하고 있는 건 아닌지 깊이 생각해보라. 무죄 추정의 원칙이니 최종 판결이 나올 때까지 확정해서는 안 된다. 단지 의혹으로 결론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을 다루는 태도에서 나는 위기 전 단계의 징후를 본다. 끼리끼리를 추종하며, 위기 징후를 못 느끼고, 위기 대응 커뮤니케이션이 작동되지 않는다면, 더 큰 단위의 위기가 오게 마련이다. 만약 국가 주요 정책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 결정된다면….

솔로몬 반지에 있다는 절묘한 표현 ‘이 또한 지나가리니’. 모든 경우에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게다. 전후좌우 상황을 충분히, 합리적으로 이해하고 닥칠 일을 전망할 수 있는 이들에게나 적용될 것이 분명하다. 부정적 정보를 의도적으로 회피하면 결과는 더 참혹해진다.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m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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