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손영옥] 우리 춤의 신세계 ‘향연’ 기사의 사진
미니멀리즘 패션 브랜드 ‘구호(KUHO)’로 잘 알려진 디자이너 정구호씨가 무대 연출가로 변신해 성공 공식을 쓴다는 이야기는 제법 들었다. ‘그래봤자 전통춤, 어디 가겠냐’ 하는 생각을 했다. 지난해 12월. 그날따라 도심 교통 체증은 더 심했다. 겨우 늦지 않게 도착한 서울 남산 자락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한데 막이 오르고 눈앞에 펼쳐진 우리 춤 ‘향연’은 나의 상식과 상상을 벗어난 것이었다. 춤의 신세계였다. 무엇보다 무대에 수직으로 늘어뜨려진 10m 길이의 거대한 전통 매듭의 원색이 자아내는 강렬함에 압도당했다. 그러면서 무대엔 절제된 색감의 전통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의 춤사위가 가로로 펼쳐지는데, 그 수직과 수평의 시각적 조화가 만들어내는 긴장감이라니.

국립무용단의 대표 레퍼토리인 ‘향연’이 마침내 전국 투어에 나선다. 국립극장 산하 국립무용단은 내달 서울 예술의전당을 시작으로 대전, 울산, 거제에서 공연을 이어갈 거라고 최근 밝혔다. 관련 보도자료를 접하니 그때의 감동이 기분 좋게 되살아났다.

단언컨대, 향연은 한국 공연사에 획을 그은 작품이다. 2015년 12월 초연 이후 2016년, 그리고 지난해엔 2월, 12월 두 차례나 공연했고, 매번 매진 신화를 썼다. 올해는 해오름극장이 리모델링에 들어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을 하는 것이다. 내 집이 공사하는 탓에 셋방살이 공연을 하는 것이지만, 오페라극장의 객석 수가 1900석으로 해오름극장보다 700석이 더 많다는 이점은 있다. 또 오페라와 발레를 주로 공연하는 무대에 한국 춤을 올리는 것이니 남산골에 갇혔던 전통춤이 한강을 건너 서양 춤의 중심지로 진격하는 모양새다.

향연은 말 그대로 궁중무용 종교무용 민속무용 등 장르별로 엄선한 전통춤 소품을 뷔페처럼 보여준다. 장고춤, 소고춤, 태평무, 선비춤 등이 등장하는데 이름만 들으면 고리타분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4계절의 스토리 라인 안에 이들 춤을 집어넣은 것이다.

연출가 정구호의 역량이 보이는 대목은 발상의 전환이다. 상식의 해체다. 그는 ‘KUHO’에서 보여주듯 미니멀리즘의 대가다. 이 무대에선 전통 오방색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미니멀리즘을 구현했다. 그가 재구성한 ‘신태평무’를 보자. 왕과 왕후가 태평성대를 기원하며 춘다는 태평무는 원래 적·청·황·흑·백의 오방색이 한 의상에 다 들어간다. 정구호는 과감히 한 가지 색만 끄집어냈다. 남녀 무용수의 의상을 각각 빨강과 파랑 하나로만 정리했다. 그러곤 무대 장식에 노랑과 검정을 집어넣어 오방색을 무대라는 큰 그림 안에서 구현했다.

매번 오방색의 하나로 등장하는 게 원색의 매듭이다. 여인네 노리개에나 쓰였고, 그래서 눈길을 크게 받지 못했던 매듭 장식을 거인처럼 키웠다. 무대의 영웅으로 만들어냈다. 전통 공예의 아름다움을 그렇게 무대 장치로 부각함으로써 재발견되도록 이끈 것이다. 물론 전통춤의 대가인 조흥동의 안무력과 국립무용단 무용수의 기량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성공 스토리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향연의 성공이 반가운 것은 젊은 층에 어필하기 때문이다. 중장년층 뿐 아니라 아이돌에 환호하는 20, 30대 젊은 관객에게도 인기몰이를 했다. 지난해 두 차례 공연에선 이들 연령층의 예매비중이 60% 이상이었다. 정구호는 이후 국립무용단과 함께 춘향전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춘상’을 선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플레어스커트를 입은 여주인공 ‘춘’에서 보듯 이는 전통춤의 번안에 그친다. 향연은 우리 전통춤이 오롯이 보존된 채 무대장치와 색으로만 현대적 감각을 입혔을 뿐이다. 그래서 더 귀하다. 향연이 향할 곳은 이제 해외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16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2016년 한국 관광의 해 개막식에서 향연의 일부를 선보였다. 보다 적극적인 지원이 요구된다.

손영옥 문화부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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