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경제인사이드] 피해 뻥튀기… ‘연성 보험사기’ 판친다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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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보험사기 이후 95년 흘러 CCTV·빅데이터 등 활용 늘어
공모형 사기 감소세 보이지만 과다 입원·피해 과장 사례 증가
지난해 적발 7302억원 사상 최대… 전문가 “수사 기법·환경에 한계”
입원 적정성 심사하는 심평원, 인력 확충하고 공정성 확보해야


한국 최초의 보험사기는 일제강점기인 192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의 보험설계사 역할을 했던 조모씨는 당시 경기도 수원군 마도면에 사는 이모씨의 부인이 위독하다는 걸 알게 됐다. 조씨는 다른 여자를 이씨 부인으로 위장하고 5000원의 보험을 계약했다. 이씨 부인이 몇 개월 후에도 죽지 않자, 조씨는 허위로 사망신고를 하고 보험금을 가로챘다가 적발됐다. 이 사건 이후로 95년이 흘렀다. 하지만 보험사기는 여전하다. 수법은 더 교묘해지고 있다. 보험사기는 선량한 소비자의 보험료 인상, 건강보험 재정 악화 등으로 직결돼 폐해가 크다. 금융 당국과 수사 당국이 팔을 걷어붙이고 ‘근절’을 외치지만, 보험사기의 그림자는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왜 보험사기는 계속되나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보험사기 적발금액이 7302억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고 23일 밝혔다. 적발인원은 8만3535명으로 전년보다 0.6% 늘었다. 이뿐일까. 이 통계는 ‘빙산의 일각’이다. 서울대와 보험연구원이 추정한 보험사기 규모는 2014년 기준으로 4조5455억원에 이른다. 보험사기는 불필요한 보험료 인상을 불러온다. 금감원에 따르면 가구당 23만원, 개인당 7만원의 보험료 인상 피해를 입고 있다.

최근 보험사기의 특징은 ‘연성 보험사기 증가’다. 보험업계에선 사전에 짜고 일부러 사고를 낸 후 보험금을 편취하는 유형을 ‘경성 보험사기’로 분류한다. 이와 달리 연성 보험사기는 이미 일어난 사고의 피해를 과장해 불필요한 입원 치료를 받는 행위 등을 지칭한다.

금감원은 연성 보험사기 증가 원인에 대해 “과다 입원 및 피해를 과장하는 형태의 보험사기가 범죄행위라는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의사 면허가 없는 사람이 차린 병원, 이른바 ‘사무장 병원’이 횡행하는 것도 연성 보험사기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가짜 병원’ 관계자들이 보험 가입자들을 꼬드겨 장기간 입원시킨 사례가 최근 많이 적발됐다”고 말했다.

보험사기가 끊임없이 발생하는 근본 원인은 뭘까. 전문가들은 보험계약의 ‘도박적 성격’을 꼽는다. 적은 보험료로 거액의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장기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가입자들이 유혹을 받게 된다는 설명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사고발생 시 보험금 지급이라는 무형의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 부족한 측면도 있다. 소멸되는 보험료에 대한 보상심리가 내재돼 있다”고 덧붙였다.

수사기법은 발전하지만…

금융 당국은 보험사기 근절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한다. 금감원은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공모형 보험사기를 적발할 수 있는 ‘관계형분석(SNA) 기법’을 2016년에 도입했다. 각종 사고의 피해자, 가해자와 관련되는 빅데이터를 모아 관계망을 형성하면 여러 차례 사고를 조작한 일당을 찾아낼 수 있다.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지인과 공모해 고의 자동차사고를 유발했다가 적발된 100명도 이런 식으로 덜미를 잡혔다.

2016년부터 ‘보험사기방지특별법(이하 특별법)’도 시행됐다. 기존에는 보험사기를 별도로 처벌하는 법이 없어 형법의 사기죄로 다뤘었다. 특별법은 보험사기의 벌금형 상한선을 기존 2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높여 가중 처벌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수사 기법·환경에 여전히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임준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특별법 제정과 보험사기 적발시스템 고도화가 경성 보험사기에 효과를 보지만, 연성 보험사기 억제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소수의 사람이 저지르는 경성 보험사기와 달리, 연성 보험사기는 누구나 기회가 되면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행동경제학이나 심리학적 접근이 필요하다. 변혜원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영국 국세청의 실험 결과를 보면, 이웃 대부분이 기일 내 세금을 내고 있다는 안내를 받은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더 높은 납세율을 보였다”며 “이에 따라 보험 규정을 명확히 해서 가입자의 정직한 행동을 유도하고, 다른 가입자도 피해사실을 정직하게 신고한다는 사실을 알려 주관적인 합리화 여지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별법 상의 ‘보험사기’ 정의가 모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별법은 보험사기를 ‘보험사고 발생과 관련해 보험회사를 기망하고 보험금을 청구하는 행위’로 정의한다. 만약 가입자가 본인의 질병 여부 등을 속이고 보험에 가입한 뒤 사고 발생에 따른 보험금을 청구했다면 특별법 적용을 받지 않을 수 있다. 사고 발생 자체에 대해선 기망 행위가 없기 때문이다. 박찬우 경찰청 경제범죄계 경정은 “보험금 청구 이전의 예비행위를 처벌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며 “상습범의 경우 특별법과 일반 사기죄가 처벌 강도가 동일해 보험사기 가중처벌 효과가 떨어진다”고 말했다.

근절을 위한 과제

보험사기 근절을 위한 과제는 산적해 있다. 보험사기를 수사할 때 가장 큰 장애물은 국민건강심사평가원의 입원적정성 심사가 지연된다는 점이다. 특별법은 수사기관이 보험사기 의심 건에 대해 가입자의 치료행위가 합당한 것인지를 국민건강심사평가원에 심사 의뢰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의뢰 건수가 급증하는데 비해 심평원의 인력이나 예산이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다. 심사가 장기간 지연돼 수사에 차질이 생기기 일쑤다. 경찰청 관계자는 “복잡한 사건의 경우 국민건강심사평가원의 심사가 1년 이상 걸린다”며 “인력과 예산을 확보하고 심사의 공정성을 담보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험사기 수사에 ‘컨트롤 타워’가 없다는 점도 문제다. 현재는 보험사와 금감원, 경찰이 ‘각개전투’ 식으로 보험사기 수사를 하고 있는 형편이다. 자료 확보도 쉽지 않다. 금감원 관계자는 “사건을 조사할 때 산재보험이나 국민건강보험 등과 관련한 지료가 필요할 경우가 많다. 그런데 개인정보보호법이 강화되면서 자료를 요청할 수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지난 2월 김한표 자유한국당 의원이 ‘금융위원회의 자료 요청권’을 허용하는 내용의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미국과 영국은 보험사기 혐의자에 대한 국가기관의 정보 제공을 의무화하거나 관계기관 합동 보험사기 방지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보험사기를 전담하는 상설기구를 설치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특별법에 넣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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