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노석철] 북·중도 상상력 가져야 기사의 사진
“중국이 강력한 대북 제재를 하는 것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북한에 워낙 강경하기 때문이다. 시 주석은 북한을 아주 싫어한다. 그렇지 않다면 밀수를 대충 묵인해주고 그럴 텐데 지금은 다 때려잡고 있다. 그래서 북한이 아주 힘들어하고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둔 지난 2월 초 베이징 외교 소식통이 사석에서 기자들에게 한 얘기다. 그 때까지만 해도 북한은 대외무역의 90%를 중국에 의존하면서 핵·미사일 도발로 말썽만 일으키는 골치 아픈 존재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역시 ‘버릇없고 거친’ 젊은이 정도로 치부됐다. 그래서 중국이 북한에 최소한의 숨통만 터주면서 스스로 백기를 들 때까지 봉쇄하는 미국식 압박을 구사한다는 해석도 나왔다. 물론 북한이 미국과 직거래할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하던 때였다.

하지만 북한은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판을 완전히 뒤집어버렸다. 남한 특사단이 북한을 방문하고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이 예고되자 중국은 다급해졌다. 북한은 초조해하는 중국의 손을 잡아줬다. 김 위원장이 지난 3월 말 베이징을 방문해 중국의 체면을 세워주자 당시 시 주석의 표정에선 흡족함과 고마움이 그대로 묻어났다. 그리고 43일 뒤 김 위원장은 중국 다롄에서 시 주석과 파격적으로 다시 만났다. 시 주석은 “북·중 두 나라는 운명공동체, 변함없는 순치의 관계”라며 순망치한(脣亡齒寒·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다)을 거론했다. 과거 임진왜란 때 명나라가 조선에 파병할 때나, 1950년 한국전쟁 때 중국이 참전한 것도 순망치한 논리가 동원됐다. 시 주석이 순치를 거론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중국은 미국이 북한을 넘어 중국 턱밑까지 다가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의 군사력을 최대의 위협으로 보고 있다. 반면 북한 핵·미사일 문제는 “북한과 미국이 직접 대화로 풀어야 할 문제”라고 치부해 왔다. 북한 핵은 견딜 수 있지만 북한이 미국과 한 편이 되는 것은 못 참는다는 속내인 셈이다.

중국이 오랫동안 북한을 외면하다 미국과 직거래를 하려하자 급하게 ‘끼어들기’를 하는 이유다. 시 주석이 김 위원장에게 모종의 약속을 했다거나 중국이 북·미 정상회담을 꼬이게 한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실제 북·중 정상의 다롄 회동 후 북한의 태도가 거칠어지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시진핑 배후설’까지 제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김 위원장이 시 주석과 두 번째 만난 후 태도가 좀 변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의 태도 변화는 단순히 북·미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려는 전술 차원이라고 믿고 싶다. 북한은 북·미 직접대화로 중국을 애타게 함으로써 우군으로 단단히 묶어뒀다. 또 미국의 요구조건이 계속 늘어나자 ‘북·미 회담 재고’까지 거론하며 대미 협상력을 높이고 있다. 서로 밀고 당기는 협상 과정에서 이 정도의 신경전은 불가피하다.

다만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준비도 순조롭게 진행되는 등 큰 틀의 변화는 없어 크게 걱정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 북한도 이번 북·미 정상회담이 잘못되면 엄청난 고통이 뒤따른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판을 깨기는 쉽지 않다. 북한 입장에서 비핵화 협상이 잘못되면 대북제재 완화나 경제 발전, 대중 종속 탈피도 모두 요원해진다. 중국도 해묵은 순망치한 사고에서 벗어나 평화가 정착된 한반도를 상상해봐야 한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미국도 북한을 이유로 한반도에서 군사력을 강화할 명분이 없고, 중국이 바라는 주한미군 철수 요구도 가능해진다. 북한을 통한 교역이 확대되면 중국의 낙후지역인 동북 3성도 발전할 수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는 중국과 북한에 엄청난 이득이다. 다만 한반도를 둘러싸고 70년가량 이어져온 냉전 구도가 새 시대를 향한 사고를 가로막고 있을 뿐이다. 이젠 과거의 고정관념을 버리고 새로운 한반도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할 때다. 긍정적인 상상력은 중국과 북한에 더욱 절실하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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