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미술관’ 80돌… 건축물 미학·걸작 풀어놓다 기사의 사진
덕수궁 석조전 방향에서 바라본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1938년 ‘이왕가미술관’이라는 이름으로 탄생한 이 건물은 고전주의 건축미학을 완벽하게 구현한다. 손영옥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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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덕수궁엔 서양식 건축물이 두 동 있다. 대한제국 말기인 1910년 완공된 석조전(현 대한제국역사관)이 그 하나. 일제강점기인 1938년 석조전 별관으로 지어진 이왕가미술관(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이 두 번째다. 석조전에 고종 황제의 근대화 의지와 열망이 담겼다면, 별관에는 식민지의 비애가 서려 있다.

그 이왕가미술관의 건립 80주년을 맞아 국립현대미술관이 ‘내가 사랑한 미술관: 근대의 걸작전’을 마련했다. 올해는 이곳이 1998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의 덕수궁 분관으로 쓰이기 시작한 지 2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전시는 투트랙으로 구성됐다. 우선, 일본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헤이(1880∼1963)의 설계로 탄생한 건축물 그 자체다. 전시를 공동 기획한 김종헌 배재대 교수는 23일 “모든 공간에 3×3×3m의 수학적 미학이 가동하며 정확히 좌우대칭을 이루는 등 고전주의 건축 미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근대 건축물”이라고 평가했다. 석조전이 황제의 생활공간으로 지어졌던 것과 달리, 이곳이 애초부터 미술관 용도로 지어진 것도 의미심장하다.

건축물은 중앙홀을 중심으로 수직과 수평으로 확장하며 전시공간이 구성되는 수학적 미학을 발견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기념품 가게에, 덧칠된 페인트에 아름다움이 가려졌으나 이번 전시를 계기로 온전히 살려낸 것은 늦었지만 다행이다.

전시도 고전주의 건축 원리를 충실히 보여주기 위해 1936∼37년 추정의 청사진(복사본)뿐 아니라 나카무라가 트레이싱지에 연필로 직접 그린 ‘정면도’ 원본 등을 일본에서 공수해와 일반에 처음 공개한다.

이왕가는 일제가 조선 왕조를 낮춰 불렀던 이름이다. 일제는 석조전에는 일본인 현대 화가들의 작품을 전시했으나, 이곳 별관에는 고려청자 불화 조선백자 등 조선 이전의 유물만 전시했다. 학예연구실 김인혜 팀장은 “일본은 근대, 조선은 전근대라는 등식을 유포하는 이미지 정치의 장이었다”고 설명했다.

다른 트랙은 걸작을 통해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1호 서양화가 고희동의 작품을 비롯해 근대 대표작가 73명의 작품 90점이 나왔다. 나라를 잃었을 때는 한 점도 걸리지 못했던 현대미술 작품이 비로소 제자리에 걸리게 됐다는 상징적 의미도 있는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1969년 10월 구 경복궁 미술관에서 개관했다. 당시는 미술관이 대한민국미술전람회가 열리는 장소로 이해돼 소장품 ‘0점’으로 초라하게 출발했다. 따라서 실질적인 개관전은 1972년 열린 ‘한국근대미술 60년 전’이었다. 이 전시를 전후해 근대미술 작품의 발굴과 수집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1971년 최고가 100만원에 구입한 박수근의 ‘할아버지와 손자’, 같은 해 20만원에 산 이중섭의 ‘투계’ 등이 자랑처럼 걸렸다. 고희동의 ‘자화상’은 이 전시를 전후해 유족이 이삿짐 꾸러미 속에서 발견해 알려와 구입했다.

한국적 인상주의를 개척한 오지호의 ‘남향집’은 유족이 작가 사후 80년대에 기증한 총 34점 중 하나다. 이렇게 국립현대미술관은 경복궁 시기(69∼73년), 덕수궁 시기(73∼86년), 과천 시기(86∼)를 거치며 소장품을 확충해 현재 총 8144점을 갖추고 있다.

미술관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를 보여주려는 시도는 신선했다. 하지만 선택과 집중이 부족했다. 덕수궁관 개관 20주년에까지 방점이 찍히면서 소장품의 역사를 80년대 이후까지 광범위하게 보여주다 보니 이왕가미술관의 역사성 보여주기에 대한 집중도가 현격히 떨어진다. 전시는 10월 14일까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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