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칼럼] 北, 정상국가 되려면 막말부터 버려라 기사의 사진
천하의 인간쓰레기, 버러지, 얼뜨기, 바퀴새끼 등 막말 수위 너무 지나쳐
손바닥 뒤집듯 약속 어기는 행태도 시정해야
정부, 트럼프 행정부처럼 때로는 단호하게 대응하길


북한이 상대의 기를 꺾으려 할 때, 협상 주도권을 쥐려 할 때 내놓는 비난 성명이나 담화, 논평들은 언제 봐도 섬뜩하다. 우리와 같은 말을 사용하는 지구촌 유일한 나라인데, 어떻게 저런 험한 말을 공개적으로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된다.

지난해 1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한해 국회 연설을 통해 각종 실례(實例)를 들어가며 북한을 ‘지옥’, 김정은을 ‘잔혹한 독재자’라고 비판한 적이 있다. 그때 북한은 이렇게 맞받았다. “광언망설과 흉언패설의 종합체.” “트럼프야말로 박테리아, 바퀴새끼라고 불러 마땅한 버러지이며 인간 세상이 아니라 지옥이 더 어울리는 죽은 자다.”

최근에 ‘사이비 우국지사’ ‘아둔하다’란 표현이 나왔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리비아식 북핵 반출을 거론한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을 비난하면서 쓴 말이다. 볼턴은 2003년 6자회담 때를 회고하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당시 볼턴이 김정일을 ‘독재자’로 묘사하자 북한은 ‘인간쓰레기’ ‘흡혈귀’라고 공격을 퍼부었다. 김계관에 이어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내놓은 담화도 비슷하다. 그는 북한이 리비아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고 경고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에게 “아둔한 얼뜨기” “주제넘게 놀아댔다”라고 힐난했다. 북·미 정상의 싱가포르 담판을 앞둔 기싸움의 성격이 짙었지만, 결국 납작 엎드려야 하는 수모를 자초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취소’ 카드를 내밀자 부랴부랴 화해 담화를 내고, 남북 정상회담을 여는 등 꼬리를 내렸다.

4·27 판문점선언 채택 뒤 문재인정부를 옥죄는 보도문 등에도 막말이 등장한다. 문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속된 말은 없다. 하지만 ‘천하의 인간쓰레기’ ‘버러지’란 표현이 등장한다. 2016년 망명한 태영호 전 주영공사와 대북전단을 날려 보내는 탈북자들을 지칭한 말들이다. 그중 태 전 공사에 대한 공격이 심하다. 망명 이후 줄곧 ‘미성년 강간범죄자’ ‘도주자’라고 그를 압박해온 북한이다. 그럼에도 수많은 인터뷰와 토론회 등에서 김정은 체제의 폭정을 신랄하게 고발한 데다, 얼마 전엔 북한 정권의 실상을 생생하게 고발한 책 ‘3층 서기실의 암호’를 내 베스트셀러에 올렸다. 책에서 그는 ‘북한은 나라 전체가 오직 김정은 가문만을 위해 존재하는 노예제 국가’라고 강조했다. 머리말에서는 ‘김정은을 평화의 천사, 정상적인 인간으로 묘사하면서 대한민국 국력이 가져온 (남북 정상)회담 성과를 김정은의 과감한 결단과 용단으로 돌리는 것은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이렇게 ‘최고존엄’의 아픈 구석을 계속 찌르고 있으니 눈엣가시 같은 존재일 것이다.

그의 말이 틀렸는가. 또 세습왕조체제 유지에 급급한 독재국가에서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3만명이나 되는 북한인들이 생명을 걸고 남쪽으로 넘어온 뒤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애쓰는 이유를 알고 있기는 한가.

태 전 공사는 물론 대한민국 국민으로 다시 태어난 탈북민들은 인간쓰레기도, 버러지도 아니다. 그들은 인간쓰레기, 버러지 같은 생활을 견디다 못해 사선을 넘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곳을 찾아온 용기 있는 이들이다. 북한에서 그들을 인간쓰레기, 버러지 취급한 김정은과 그 추종자들은 욕할 자격이 없다.

한데 태 전 공사가 코너에 몰린 형국이다. 북한으로부터 특단의 대책을 주문받은 정부는 함구하고, 일부 여당 의원은 “태 전 공사가 평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고 주장하고,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는 ‘태 전 공사를 해외로 추방시켜야 한다’는 글까지 올랐다. 태 전 공사가 자신이 다니던 국가정보원 산하 기관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 자의로 사표를 제출했다지만, 정황상 자의만은 아니라고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김대중·노무현정부 시절 황장엽씨가 대외 활동에 제약을 받은 것처럼 태 전 공사를 공개석상에서 보기는 당분간 힘들 듯하다.

막말뿐 아니다. 북한의 약속 뒤집기도 다반사다. 4·27 판문점선언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합의 사항을 이행하지 않겠다고 겁박하는 건 물론 미국과의 물밑협상 합의도 틀었다. 어렵사리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지만 북한 언행은 정상국가와는 거리가 멀다.

북한 억지를 방관하는 현 정부 태도는 거슬린다. 판이 깨지면 안 되니까 북한이 막가도 절대 자극하지 말자는 게 대북정책 1순위가 된 듯하다. 북·미 정상회담 취소 카드로 김정은을 정신 차리게 만든 트럼프 행정부처럼 때론 단호하게 대응해야 북한의 나쁜 버릇을 고칠 수 있다. 정상국가로 이끄는 길이기도 하다.

김진홍 편집인 j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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