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면역항암제, 1회 약값이 600만원 ‘그림의 떡’ 기사의 사진
국내 암 사망률 1위인 폐암은 첫 치료부터 면역항암제를 투여할 경우 높은 치료 효과가 있고 삶의 질이 개선됨이 입증됐다. 생사기로에 선 말기 폐암 환자들이 비용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건강보험 적용 확대가 시급하다.국민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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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기 암 환자의 마지막 희망, 면역항암제 급여화(건강보험 적용)와 적응증을 확대해 주세요.”

지난달 25일부터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서 한 달간 진행된 청원 글에는 모두 7만8934명이 동의했다. 면역항암제의 건보 혜택과 환자의 접근성 확대를 요구하는 이 같은 목소리가 지난해부터 1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지금까지 올라 온 면역항암제 관련 청와대 국민청원은 20여건이다. 의약품 관련 국민청원 가운데 가장 많다.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암 환자와 가족들의 절박함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해 암이 다른 장기로 많이 퍼진 진행성(3기 말∼4기) 폐암을 진단받은 A씨(65·여)는 당시 종양조직검사를 통해 자신이 면역항암제의 효과가 높을 것으로 기대되는 대상임을 확인했다.

면역항암제는 작용 원리상 암세포 표면에 있는 PD-L1이라는 단백질 발현율이 높을수록 치료 효과가 높은데 A씨의 경우 PD-L1 단백질 발현율이 100%로 나왔다. 하지만 첫 치료를 면역항암제로 할 경우 건강보험이 되지 않아 1회 투여에 600만원 가량을 전액 부담해야 한다.

일반 항암화학요법을 쓸 수도 있었지만 구토와 탈모 같은 전신 부작용이 심해 가족들이 반대했고 결국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면역항암제 치료를 시작했다. 면역항암제를 쓴 후 A씨의 치료 효과는 눈에 띄게 좋았다. 8㎝였던 암 크기가 절반 가까이 줄었고 일상생활에 무리 없을 정도로 상태가 좋아졌다. A씨는 “앞으로 얼마나 치료비를 감당할 수 있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암 치료 패러다임 바꾼 면역항암제

3세대 항암제로 불리는 면역항암제는 암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1세대인 항암화학요법은 암세포뿐 아니라 정상세포까지 무작위로 공격해 탈모 등 부작용을 일으킨다. 2세대 표적 항암제는 특정 유전자 변이를 공격 타깃으로 해 높은 치료 효과를 보이지만 내성이 생기는 문제가 있다. 이와 달리 면역항암제는 환자 자신의 면역체계를 활성화해 몸속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돕는다. 기존 항암제보다 부작용 빈도가 낮고 치료 반응을 보이는 환자에서 반응 시간이 오래 간다는 장점이 있다.

국내 판매 허가를 받은 대표적 면역항암제로는 키트루다 옵디보 티센트릭이 있다. 비소세포폐암 흑색종(피부암) 두경부암 호지킨림프종(혈액암) 요로상피암(방광암) 위암 신세포암(신장암) 등 7개 암종에서만 사용 가능하다. 하지만 면역항암제 원리상 더 많은 암종 치료에도 적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 한 면역항암제의 경우 전 세계적으로 30여개 암종에서 700여건의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다.

환자와 암 전문가들은 치료 대상 암의 적응증 확대는 물론 효과가 입증된 암종에 대해서는 환자들이 어려움 없이 쓸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따라줘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말기에 가까운 암 환자들에게는 1분 1초가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경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발 빠른 정책 개선이 요구된다.

폐암 1차 치료 효과, 삶의 질 개선 입증

특히 국내 암 사망률 1위 폐암은 면역항암제 치료로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는 암종 가운데 하나여서 정책 변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전까지 유전자 변이(EGFR 또는 ALK)가 없어 표적항암제조차 쓸 수 없는 진행기 폐암 환자들은 전신 부작용이 따르는 항암화학요법이 유일한 1차 치료법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3월 면역항암제 가운데 유일하게 키트루다가 진행성 비소세포폐암의 1차 치료제로 허가 받으면서 한시가 급한 말기 폐암 환자들이 더 빨리 새 항암제를 접할 수 있는 희망이 생겼다. 비소세포폐암은 전체 폐암의 85%를 차지한다.

폐암의 첫 치료로 면역항암제를 쓰려면 종양검사에서 PD-L1 단백질 발현율이 50% 이상이어야 한다. 해당 기준에 맞는 환자들이 1차 치료에서 면역항암제를 사용했을 경우 기존 항암제에 비해 높은 치료 효능을 보이고 삶의 질도 개선되는 게 확인됐다.

2016년 학술지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슨(NEJM)과 지난해 세계폐암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연구결과를 보면 기존 치료 경험과 유전자 변이가 없고 PD-L1 단백질 발현율이 50%를 넘는 진행성 비소세포폐암 305명을 면역항암제 키트루다 투여군(154명)과 일반 항암화학요법 시행군(151명)으로 나눠 분석한 결과 암 크기가 줄어든 정도인 반응률, 암 병기의 진행이 없는 무진행 생존기간, 환자 삶의 질 등 모든 지표에서 면역항암제 투여군이 월등히 앞섰다. 키트루다 투여군의 전체 생존기간은 30개월로 일반항암제 투여군(14.2개월) 보다 배 이상 길었다.

이 때문에 미국 국가종합암네트워크는 진행성 비소세포폐암 환자 가운데 PD-L1 발현율이 50%를 넘을 경우 면역항암제 치료를 우선 권고하고 있다.

건강보험 안돼 고비용 부담

하지만 국내 진행기 폐암 환자들이 진단 뒤 곧바로 면역항암제를 접하는 데는 어려움이 크다. 1차 치료에서는 비용을 환자가 100% 부담해야 하기 때문. 1회 투여에 약값만 600만원이 든다. 3주에 한 번씩 투여해야 하니 1년이면 약 1억원에 달한다. 환자들이 쓸 수 있도록 허가는 받았으되 실제로는 그림의 떡인 셈이다.

이런 이유로 앞서 A씨 사례처럼 고가의 비용 부담을 감당하며 치료받거나 약값 대기가 힘들어 심각한 부작용을 알면서도 일반 항암요법을 선택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일부 환자는 1차 치료에서부터 건보 적용을 애타게 기다리며 치료를 미루고 있다.

고가인 만큼 국가 건보 재정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안명주 교수는 28일 “면역항암제의 경우 현재 PD-L1단백질 발현율이 50% 이상으로 좋은 효과가 예상되는 환자들에 한해 2차 치료시 건보 혜택이 주어지고 있다”면서 “1차 치료로 건보가 넓혀지더라도 기존 2차 환자들이 그대로 혜택을 받는 만큼, 환자 전체 규모는 동일하다”고 말했다. 해마다 새로 진단받는 진행성 비소세포폐암 환자 1만여명 가운데 면역항암제 사용 조건에 부합하는 이들은 약 25%(2500여명)로 추산되고 있다.

안 교수는 “면역항암제는 효과가 입증돼 허가받은 암종부터 약을 필요로 하는 환자가 경제적 어려움 없이 쓸 수 있도록 빠른 건보 혜택이 요구된다”면서 “특히 암 사망률이 가장 높은 폐암의 경우 높은 치료 효과, 삶의 질 개선 등이 연구 데이터로 입증된 만큼 첫 치료부터 원활하게 면역항암제 사용이 가능하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1차 치료에 면역항암제를 바로 사용해 반응을 보이는 환자들은 2차 치료로 넘어갈 필요가 없다”면서 “그에 따른 비용 절감과 함께 기존 항암제 부작용을 견뎌야 하는 환자들의 짐을 덜어주는 측면도 감안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1차 치료부터 건보가 적용되면 암 환자 산정특례(본인 부담률 5%)기준에 따라 1회 투여 약값은 30만원으로 줄어든다.

▒ ‘허가범위 초과 항암 치료’ 놓고 갈등 계속
환자들 “더 이상 다른 방법이 없으니 허용해 달라”
의료계 “심각한 부작용 우려… 신중한 접근 필요”


면역항암제가 다양한 암종의 차세대 치료제로 주목받으면서 ‘오프라벨(허가범위 초과) 항암 치료’를 둘러싼 환자와 의료계, 정부 간 동상이몽(同床異夢)이 계속되고 있다.

오프라벨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용도(적응증) 외의 목적으로 약을 처방하는 경우를 말한다. 적합한 약이 없거나 촌각을 다투는 환자 치료를 위해 꼭 필요할 때 환자 동의를 얻어 비급여(100% 본인 부담)로 이뤄진다. 면역항암제의 경우 현재 비소세포폐암 등 7개 암종에만 사용이 허가돼 있다.

정부는 허가범위를 벗어난 암에 면역항암제를 사용하려면 환자 안전 차원에서 2차례 관문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 병원 내 여러 전문가가 참여하는 다학제적위원회와 협의 후 사용을 신청하고 60일 내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암질환심의위원회의 사전심의도 통과해야 한다. 다학제적위원회가 가능한 의료기관은 전국 71곳에 한정했다.

이 때문에 사전 승인까지 두 달 넘게 걸리는 등 한시가 급한 말기 암 환자의 치료 시기가 늦어진다는 문제점이 제기됐다. 면역항암제 허가를 받지 못한 유방암 간암 환자와 가족들은 오프라벨 항암치료의 선택권을 넓혀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유방암 4기 아내를 둔 40대 남성은 “제 아내에겐 더 이상 쓸 수 있는 약이 없습니다. 면역항암제가 유일합니다”라는 팻말을 목에 걸고 국회와 방송국, 서울 지하철 등을 돌며 호소했다. 포털사이트의 면역항암카페 회원들은 지난달 6일 심평원 앞에서 시위도 벌였다.

하지만 의료계는 면역항암제의 경우 탈모 등 일반 부작용은 적지만 면역체계와 관련해 더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는 만큼 안전성·유효성이 확보되지 않은 암종에 대해선 신중한 사용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한 보건당국은 환자의 접근성을 높이고자 71개 의료기관 가운데 30여곳에는 면역항암제를 먼저 투여한 뒤 나중에 신청하는 ‘사후 승인제’를 도입하는 등 보완조치를 내놨다. 그러나 일부 환자들은 “정부가 항암제 사용조건을 일부 완화해 줬다고 하나 ‘허가’라는 측면에서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절차만 더 까다로워졌다”며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다음 달 초 추가 제도 개선안을 재행정예고한 뒤 오는 7월부터 본격 시행할 방침이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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