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이진우] 감성정치의 그림자 기사의 사진
남북 정상회담의 드라마는 김정은이라는 인물에 집중돼 북한 체제의 문제점을 망각하게 만들어
스포트라이트에 눈멀지 말고 오히려 스포트라이트에 배제된 그림자에 주목해야


좋은 일은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은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과 공감하고 그들을 배려하고 지원하는 이타적 선행이 우리 사회를 더 좋게 만들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런데 좋은 동기에서 이루어지는 행위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우리는 이타적 행위의 전제조건인 공감과 동정심을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공감은 오히려 우리의 이성적 판단을 왜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공감의 특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공감은 우리의 주의를 집중시키게 만드는 ‘스포트라이트’와 같기 때문이다.

우선, 스포트라이트의 초점이 좁은 것처럼 공감의 포커스는 제한돼 있다. 세상에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수없이 많지만 우리는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는 곳의 사람들과만 공감한다. 다음으로, 공감은 특정 개인에게 초점을 맞춘다. 먼 나라 낯선 사람들의 고통도 우리 이웃의 고통처럼 끔찍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우리는 같은 나라 사람에게 더 쉽게 공감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결코 동시에 여러 사람과 공감할 수 없다고 한다.

끝으로, 공감은 이타주의적 행위의 구체적인 결과에 대해서는 대체로 침묵한다. 정서적 호소에 반응한다고 해서 세상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정말 세상을 바꾸고자 한다면 심금을 울리는 곳보다는 효과적으로 생명을 살리고 고통을 줄인다고 검증된 단체에 기부하는 것이 좋다.

이성이 없는 이타주의가 오히려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는 것처럼 합리적 논의를 배제하는 감성정치 역시 의도하지 않는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때로는 정치도 감동을 필요로 한다. 4·27 남북 정상회담은 진한 감동을 준 한편의 좋은 드라마였다. 판문점 선언이 천명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은 이론의 여지없이 좋은 일이다. 누가 한반도를 비핵화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일에 반대할 수 있겠는가.

문제는 남북 정상회담이 공감의 스포트라이트와 같은 형식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잘 연출이 되었습니까”라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말처럼 남북 정상회담은 잘 짜인 감성정치의 드라마였다. 예견되지 않은 문재인 대통령의 월경과 도보다리에서 두 정상 간의 대화는 온 국민을 감동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다. 통역이 필요 없는 만남, 술잔을 건네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손에 손을 잡고 영상 쇼 ‘하나의 봄’을 바라보는 두 사람을 보면 마치 한반도에 평화의 봄이 찾아와 곧 통일이라도 될 것 같은 감동에 휩싸인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치열한 토론과 합리적 논의보다 공감과 감동을 활용하고 동원하는 것은 분명 ‘감성정치’다.

그러나 이러한 감성정치는 몇 가지 그림자를 드리운다. 첫째, 스포트라이트의 빛을 받는 곳은 환하게 부각되고 그렇지 않은 곳은 암흑 속으로 사라지는 것처럼 남북 정상회담은 다른 사회적 문제들을 어둡게 가린다. 두 자릿수로 증가한 청년실업률, 경제지표의 전반적 감소와 경기침체, 경제정책의 실종 등은 그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진다.

둘째, 공감의 스포트라이트가 특정한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처럼 남북 정상회담의 드라마는 김정은이라는 인물에 집중돼 북한 체제의 문제점을 망각하게 만든다. 4·27 드라마로 김정은은 고모부를 쏴 죽이고 이복형을 독살한 잔인무도한 폭군에서 예의 바르고 겸손한 통치자로 둔갑한다. 어느새 사람들은 김정은을 친근하게 느낄 뿐만 아니라 세계 최대강국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그를 대견스럽게 생각하기까지 한다.

끝으로, 감성정치는 그것이 가져올 미래의 구체적인 결과를 이성적으로 고려하지 않는다. 장기적인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합리적 의심을 통한 불신의 점진적 제거가 효율적이지만 공감과 감동의 감성정치는 모든 이성적 비판과 논의를 불신하는 경향이 있다. 새롭게 시작하려면 공감과 감동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 시작이 결실을 맺으려면 냉정한 판단과 합리적 논의가 필수적이다.

우리는 스포트라이트에 눈멀지 말고 오히려 스포트라이트에 배제된 그림자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어떤 긴박한 문제들이 남북문제에 묻혀버리지 않는지, 남북 정상회담의 진한 감동으로 합리적 논의가 배제되는 것은 아닌지를 냉철하게 따져봐야 한다. 4·27 드라마의 대미를 장식할 북·미 정상회담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있는 지금 감성정치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가슴보다 차가운 머리가 필요하지 않은가.

이진우(포스텍 석좌교수·인문사회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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