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전정희] 지독한 세월과 이산가족 기사의 사진
지난 토요일 오후 서울 사당역 부근에서 ‘번개 모임’을 한 우리는 뜻밖의 속보에 깜짝 놀랐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판문점 북측 통일각 ‘번개 정상회담’ 소식 때문이었다. 한 친구는 “눈물이 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정치적 견해를 떠나 대한민국 공동체 일원으로 감사한 마음이었다. 이날 남북 두 정상은 다음 달 1일 고위급 회담을 열어 군사적 긴장완화를 위한 군사 당국자 회담과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 회담을 연이어 갖는 데 합의했다.

필자는 ‘양의 탈을 쓴 북괴’라는 교육을 받으며 초·중·고를 마쳤다. 그리고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진압하고 ‘체육관 선거’로 대통령이 된 후 대학을 다녔다. 격동의 세월 속에 늘 정의롭고자 했던 필자는 어느덧 50대 후반이 됐다. 온라인상에서 ‘생각 없는 기성세대’가 된 것에 씁쓸하지만 한강의 뒤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내는 것이 순리임을 어쩌랴. 그 20대 때 당시 인권변호사였던 문재인은 대통령이 돼 냉엄한 국제정세 속의 한반도 운명을 헤쳐 나가고 있다. 1950년 12월 흥남부두 철수 피란민의 아들이 대통령이다.

부모 세대는 우리에게 “지독한 세월을 살았다”고 말한다. 전쟁과 가난 아니었겠는가. 6·25전쟁 세대의 체험담을 엮은 실록 ‘남으로 가는 길’ 일부. 함경도 길주 출신의 어느 실록 증언자는 흥남부두 철수작전이 시작되자 해산을 앞둔 아내와 흥남 가는 열차에 간신히 몸을 실었다. 고향에 부모를 남겨둔 채였다. 피란민이 기차 지붕까지 메웠다. 그들은 급정거하면 힘없이 떨어져 죽었다. 수습은 엄두도 못 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던 기차는 끝내 신포역에 멈춰버렸고 부부는 역사 부근 빈집에 들어가 해산 통증과 추위를 피했다.

그 빈집의 어둠에 익숙해지자 구석에서 한 아이가 공포에 질려 가냘픈 손으로 자기방어 시늉을 하고 있는 게 보였다. 방구석 짚단 위엔 아이 어머니가 총에 맞아 죽어 있었다. 부부는 새벽에 주먹밥 모두를 아이에게 쥐어주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 아이의 손을 놓으며 아내가 울부짖었습니다. ‘우리가 이런 악독한 세월을 살아야 하나’… 아이는 죽었을 겁니다.”

세계가 한반도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다. ‘6월 12일 북·미 정상회담’의 성사를 위해서라도 절박한 이산가족을 추려 통일각이든 어디든 전격적으로 만나게 했으면 좋겠다. 인류애 앞에서 전쟁하겠다고 돌아앉지는 않을 것 아닌가.

전정희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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