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준 칼럼] 최저임금 가족 기사의 사진
빠듯한 수입의 버스기사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에게 최저임금은 비용 아닌 소득
양대 노총의 최저임금委 탈퇴로 내년 법정 최저임금 정해지지 않으면 저임금 근로자에게 피해 돌아가


버스기사는 더치페이의 달인이다. 허혁(53)씨는 그렇게 말했다. 그는 전주에서 하루 18시간씩 격일로 시내버스를 몰고 있다. 웬만한 버스기사보다 더 버스기사 같은 얼굴을 가졌다고 소개하며 에세이집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를 펴냈다. 같은 운수업에 몸담았던 홍세화씨(‘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저자)가 추천사에서 고된 일상 속의 성찰과 해학을 칭찬했다. 내게는 버스기사의 벌이와 씀씀이를 엿보게 해주는 몇몇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김영란법이 이 땅에 퍼뜨리려 분투하는 더치페이가 버스기사에게 이미 일상인 것은 빠듯한 수입 때문이다. 허씨는 “기사한테 공짜 회식은 없다”고 했다. 대접받을 위치도 아니고 회식비가 나올 리도 없어 ‘1인당 1만원 한도, 무조건 n분의 1’이란 회식의 룰이 자리를 잡았다. 자신이 쓰는 것을 줄여야 가정을 건사할 수 있는 수입인데 동료 대부분이 중장년이라 애경사가 잦다. 암묵적인 ‘3-2-1’ 규칙은 그래서 만들어졌다. 아주 각별한 사이면 3만원 개인봉투를 하고 2만원이나 1만원의 관계일 때는 여럿이 단체 봉투를 만든다.

허씨는 18년간 작은 가구점을 했다. 잔머리 쓰는 장사가 질려 홀연히 집을 나갔고 돌아와 버스기사가 됐다. 관광버스를 2년 몰다 시내버스로 갈아탄 지 5년. 삼겹살 외식쯤은 부담이 없었던 장사를 그는 예술이 하고 싶어 접었다고 했다. 우리가 “와우, 예술인데!” 할 때의 그 정도 예술이면 되는데 시(詩)도 사진도 경지에 이르지 못해 버스기사가 됐더니 삶이 곧 예술이더란다. 일상을 다시 보게 해 준 이 직업이 그에게 허락한 용돈은 월 45만원이다. 삼겹살은 대단한 음식이었다.

회사는 버스기사에게 아침마다 연초대(담뱃값·3000원)와 식권(4000원) 3장을 지급한다. 도로가 밀려 밥때를 놓치는 날은 식권을 다 쓰지 못한다. 이걸 동료에게 처분하면 3300원, 지정식당에선 3500원을 쳐준다. 한 달 모아 2만∼3만원 부수입을 손에 쥐고 있다. 하루는 식권 식당이 근처에 없어 5900원 왕돈가스를 사 먹는데 아들 생각이 났다. “대학 갈래?” 했더니 “아빠 미쳤어? 빚져 가면서 왜 가” 하던 아들은 고교시절 보충수업 빼먹고 드럼을 치다가 지금은 서울에서 알바하며 드럼을 친다. 밥은 먹고 다니나 궁금했던 게다.

장애가 있는 딸은 종종 아빠 버스를 탄다. 그가 리무진처럼 부드럽게 세워주는 정류장 앞에 커피점이 있다. 딸은 그곳에서 일하며 6000원대 중후반 시급을 받았다. 한옥마을 문화해설사인 아내 수입은 하루 7시간 근무에 5만원, 허씨는 수당이 있지만 기본급을 시급으로 환산하면 7000원대 초반이다. 버스기사 아빠와 해설사 엄마, 알바생 아들과 종업원 딸. 그는 ‘최저임금 가족’이란 소제목 아래 이렇게 적었다. “우리 가족은 그날 벌어 그날 먹고사는 각자도생이다. 모두 최저임금 수준에서 일하지만 모두가 일하니 그럭저럭 살아진다.”

‘최저임금 가족’은 지난해 써둔 글이었다. 말미에 각주가 붙어 있었다. “2018년 들어 내 가족의 삶의 질은 놀랍게 좋아졌다. 최저임금이 전년 대비 16.4% 올라 딸아이 월수입이 20만원가량 늘었다. 아들한테는 얼마 늘었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더치페이로 회식하고, 식권을 모아 팔고, 왕돈가스 사 먹을 때 자식 생각을 하는 그에게 최저임금 인상은 커다란 사건이었던 듯하다. 삶의 질이 “놀랍게” 좋아졌다고 했다. 아등바등 사는 대신 그럭저럭 살기가 그만큼 수월해졌다, 세상이 내 가족도 배려해주는구나, 하는 말로 읽혔다.

6470원이던 최저임금은 올해 1월 1일부터 7530원이 됐다. 파격 인상의 영향을 분석하는 숱한 글이 쏟아졌다. 기업의 부담과 자영업자의 고통과 경제에 미칠 파급효과를 계산한 이들은 대부분 최저임금을 ‘비용’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 많은 사람에게 이 돈은 분명히 ‘소득’인데, 소득 증대의 효과보다 비용 증가의 여파에 집중하는 사회적 시선을 최저임금 생활자들은 지난 반년간 경험했다. 내가 읽은 것 중 최저임금 인상의 ‘놀라운 효과’를 말한 글은 허씨 책이 거의 유일하지 싶다.

다시 최저임금을 고민하는 계절이 왔다. 최저임금위원회는 다음 달 28일까지 내년 최저임금을 결정해야 하는데 시작부터 절름발이가 됐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양대 노총은 탈퇴를 선언했다. 어느 해보다 거친 파행이 예고됐다. 위원회가 끝내 의결하지 못할 경우 내년은 법정 최저임금이 없는 해가 될 수도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저임금 근로자에게 돌아간다. 소득이자 비용인 최저임금의 이중적 성격 때문에 노동계 주장과 속도조절론은 나름의 설득력을 갖고 있다. 절충점이 있을 것이다. 그 지점이 내년 허씨 가족의 삶의 질을 결정할 것이다.

온라인뉴스부장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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