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전철] “감사합니다” 기사의 사진
느지막한 저녁 헬스를 마치고 화장실에 들른다. 눈앞에 문구가 붙어 있다.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단어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내용이다. 집으로 간다. 그런데 저쪽 화단에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이 넘어져 있었다. 그런데 넘어진 상태에서 가로등 기둥을 부여잡고 일어서려 하신다. 그러나 자꾸 손이 미끄러지면서 다시 화단으로 몇 번을 연거푸 넘어진다. 술을 거하게 드신 어르신이었다.

그는 주위 도움 없이는 화단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그에게 화단은 인생의 늪이었다. 그는 이미 술기운과 몇 번의 실패로 기력이 다 소진되었다. 찢어진 이마에는 붉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두 손으로 그를 일으켜 세워드렸다. 힘이 들었다. 그는 젊은 나에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한 후 몸의 중심을 잡고 다시 집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몸과 세상은 이리저리 주마등처럼 슬프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가 나에게 던진 유일한 말, “감사합니다”를 만나고 머리를 들고 저 밤하늘의 빛나는 별들을 쳐다보았다. 참 마음이 묘했다. 내가 수신한 “감사함”은 그가 참으로 절실한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나에게 송신한 메시지다. 그분처럼 자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인생의 문을 누군가의 도움으로 새롭게 열어 나아갈 때 우리는 감사함의 체험을 한다.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스코틀랜드에서 3년간 전쟁포로로 있었다. 그의 인생은 차갑게 정지되었고 영혼은 고통과 희망마저도 느끼지 못하며 죽어가고 있었다. 영혼의 포로 상태였다. 어느 날 스코틀랜드의 한 가족과 함께 도로건설 작업을 한다. 그런데 그 가족은 등에 붙어 있는 번호가 아니라 몰트만이라는 이름을 불러주었다. 그는 거기에서 원수가 아닌 인간적인 연대를 경험한다. 그는 다시 웃을 수 있는 인간이 되었다며 자신을 살린 감사함의 경험을 회상한다. 누군가의 연대와 공감은 사소해 보이더라도 정작 다른 이에게는 중요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우리가 자력으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의 명확한 구분이 가능한가. 그렇다면 정말 우리가 진정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사실 우리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거나 거의 없어 보인다. 하여 그리스도인은 생명의 복잡계에 있는 감사의 코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아닐까. 감사함은 나의 삶이 이웃 없이 혼자 유지될 수 없으며, 신의 은총 없이는 내가 이렇게 존재할 수 없다는 신앙의 응답이다. 그래서 인간은 인간에 대하여 서로 감사의 존재이다. 이웃과 하나님에 대한 감사는 신앙의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나는 그의 “감사합니다”라는 말에서 외면할 수 없는 생의 진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가 화단의 늪에서 자발적으로 빠져나오는 것은 지극히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정작 그에게 손을 내민 나의 도움에는 그리 큰 힘이 들지 않았다. 거기에는 삶의 관계와 행위의 비대칭성이 있었다. 그는 감사함의 마음을 소중하고 절실하게 체험하였다. 그리스도인은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이 감사함이 중층으로 쌓인 사건의 연속임을 고백하는 이들이리라(데전 5:18). 우리 삶은 하나님의 선물이기에 이 생명을 감사로 잘 살아내야 할 과제가 있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사유는 감사(Denken ist Danken)”라고 말한다. 감사는 이웃과 하나님에 대한 사유, 교감, 반응이다. 인생을 이렇게 길쌈해준 수많은 손길들이 감사하다. 내가 너에게 마음을 열 수 있어서 감사하다. 내가 너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서 감사하다.

그 어르신은 집에 잘 들어가셨을까. ‘감사함’이라는 가난하고 향기로운 말을 묵상하게 한 그분에게 감사드린다. 주님, 우리가 두 손을 모아 사랑하는 이를 위하여 기도하게 하소서. 주님, 우리가 두 손을 모아 하나님과 동행하게 하소서. 주님,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 감사함의 마음으로 우리의 두 손을 기꺼이 내밀 수 있게 하소서.

전철 한신대 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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