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수의 감성노트] 자기감정과 대화하기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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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조절이 잘 안 된다며 진료실을 찾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화를 참기 어렵다는 하소연부터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난다. 우울감이 떨쳐지지 않는다. 불안해서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라는 괴로움까지. 내 마음인데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한다. “불쾌한 감정이 싹 사라지게 만들어주세요. 다시는 이런 느낌이 찾아오지 않게 해주세요.”

긍정적인 감정, 부정적인 감정이 따로 있지 않다. 감정은 언제나 옳다. 감정이 부정적이라서 문제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감정에 우리가 부정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우울함을 느낄 때 “내 마음이 우울하구나”라고 하면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아, 술이 당기네”라고 자신을 속이니까 문제가 되는 것이다. 회사 일로 짜증이 났다면 “업무 때문에 내가 요즘 좀 예민해”라고 하면 될 것을, 저녁 식사를 차려준 아내에게 “반찬이 이게 뭐야. 당신까지 나를 무시하는 거야!”라며 감정을 투사하니까 문제가 생기는 거다. 부하 직원의 일처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화가 났다면 “야, 제대로 못 해”라고 고함치기 전에 “나는 지금 화가 났구나∼”라고 마음속으로 세 번만 읊조려 봐라. ‘버럭’할 일이 확 줄어든다. 억지로 감정을 통제하겠다고 덤벼들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인정하게는 먼저다.

감정을 세밀하게 구분하고, 적확한 언어로 묘사하려고 노력하면 정서조절력이 길러진다. “다 힘들어”라고만 할 뿐 자기감정인데도 제대로 표현 못하는 사람을 자주 본다. 사회불안장애(발표 불안이나 무대공포증 같은)나 우울증 환자는 감정 분화가 잘 되어 있지 않다. 우울과 불안은 엄연히 다른데도 “에이, 짜증나”라고 뭉뚱그려버리면 감정은 해소되지도 않고 불쾌감은 더 쌓인다. 우울은 연인과 이별한 뒤의 슬픔 때문일 수도 있고,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좌절 때문에 생기기도 하며, 마음의 깊은 상처와 연관된 것일 수도 있는데 “그냥 우울해”라고 해버리면 더 깊은 우울 속으로 빠져들고 만다.

감정의 차이를 적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은 스트레스받을 때마다 과음이나 폭식할 위험이 높다. 정서를 섬세하게 구분할 줄 알면 감정 조절도 쉬워진다. 감정은 그냥 생기는 게 아니다. 다 나름의 이유가 있고, 목적이 있다. 분노는 욕망이 좌절되면 생기고, 원하는 것을 표현하거나 얻으면 사라진다. 불안은 위협을 느낄 때 나타났다가 안전하다는 인식이 들면 누그러진다. 우울은 상실에 대한 반응이고, 삶의 의미를 되찾으면 벗어날 수 있다. 감정은 그것이 목적하는 바가 충족돼야 해소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종종 가짜 감정으로 자신을 속이곤 한다. “나는 강해야 한다”라는 고정관념에 매달려 있는 사람은 불안을 느낄 때마다 화를 낸다. 불안은 약한 사람이나 느끼는 것이고, 자신에게 그런 감정이 있다는 걸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기주장을 못하는 사람은 화내고 싸워야 하는 상황에서 울어버린다. 갈등이 생기는 게 두렵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를 어려워하는 사람은 외로움을 느낄 때마다 “혼자가 편해”라는 말로 친밀감에 대한 욕구를 덮어 버린다. 이렇게 하면 자신에게 필요한 것에서는 점점 더 멀어지고, 가짜 욕구에 끌려다니다 나중에 화산처럼 폭발하고 만다.

감정은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다. 감정을 뜻하는 ‘emotion’의 라틴어 어원은 ‘움직이다’라는 뜻의 ‘movere’이다. 모든 감정은 나름의 존재 이유가 있다. 감정의 변화가 느껴진다면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이 감정이 나에 알려주려는 건 뭘까” “이 감정은 내가 어떻게 행동하기를 원할까” 왜곡되지 않은 감정은 언제나 옳은 길을 알려준다. 그 길을 따라 몸을 움직이면 활력이 생기고, 그 길에서 벗어나면 공허가 벌칙처럼 따라온다. 고통스럽고 불쾌한 감정에도 메시지가 담겨 있다.

“우울하지 않았으면, 불안이 없어졌으면” 하고 바라기보다 “내가 느끼는 이 감정과 대화를 나눠보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자기감정과 솔직하게 소통해보겠다고 해야 한다. 불안에 휘청거리고 우울이 깊어져 어쩔 수 없이 정신과 의사를 만나야 한다면 “우울하지 않게 해주세요. 불안이 찾아오지 않게 만들어주세요”라고 말하기보다는 “이 감정은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주려고 하는 걸까요”라고 하며 자기감정에 호기심을 가지면 좋겠다. “이 감정은 내가 어떻게 행동하길 바라는 걸까요”라고 물으며 상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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